입력 : 2017.11.02 02:28
시민·관리기관 무신경에 몸살
서울광장 '시민의 목소리' 탑엔 한때 테이프로 행사구역 표시
광장시장 벽화는 노점상에 가려… 경복궁역 설치미술 방화로 전소
서울 4000개… 방치 작품도 많아
서울광장의 귀 모양 조형물 '여보세요'는 시민들 장난에 시달리다 기능을 잃었다. '여보세요'는 시민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듣겠다는 뜻에서 시가 2013년 1억4200만원을 들여 커다란 귀 모양으로 만들었다. 조형물에 있는 녹음기 앞에서 말을 하면 시 청사 지하 시민청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녹음한 소리가 나오도록 설계됐다. 4년치 녹음을 분석해 보니, 비속어 등 욕설이 152건이나 됐다. 시 관계자는 "시민청에 고성(高聲)과 비속어가 울려 퍼져 민원이 빗발쳤다. 아예 시민청 스피커를 꺼버렸다"고 말했다.

서울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늘리기 위해 설치한 공공미술 작품 중 상당수가 시민과 관리 기관의 무신경에 수난을 겪고 있다. 현재 서울의 공공미술 작품은 4003개다. 이 중 245점은 서울시와 25개 자치구가 관리한다. 나머지는 건축비의 일정 비율을 미술작품 설치에 쓰도록 의무화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민간에서 설치했다. 관리 책임은 건축주에게 있다.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의 '해머링맨(망치질하는 사람)', 청계천에 설치된 올덴버그의 '스프링' 같은 조형물이 대표적인 공공미술 작품이다.
공공미술 작품은 대부분 광장이나 거리에 설치돼 철저하고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작품이 방치되다시피 해 작품이 아니라 흉물로 전락했다. 1974년 종로구 광장시장 길목 우리은행 외벽에 걸린 오윤 작가의 부조 벽화 '세상'은 시멘트벽보다 못한 처지다. 가로 32m, 세로3.4m의 작품 앞에는 십여 년 전부터 노점상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벽화는 양말과 호떡 등을 파는 노점 천막에 반 이상 가려졌다. 10월 31일 작품 앞을 지나던 시민 강민정(38)씨는 "매일 이 앞을 지나다니지만 예술 작품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시는 작품을 적당한 장소로 옮길 계획이라고 한다.
2011년 대성산업은 구로구 신도림 주상복합 디큐브시티를 조성하면서 미디어아트 작품 '볼텍스트(vortext)'를 25억원에 사들여 구로구청에 기증했다. LED 전구 2만4000여 개가 반짝이도록 설계됐지만 관리 부실로 기능을 잃었다. 강동구청이 관리하는 육봉환 작가의 빗살무늬토기형 조명탑(둔촌동 생태공원 사거리)엔 불이 켜지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15일 종로구 경복궁역 지하보도에 설치된 이영조 작가의 '지하도(地下圖)'라는 작품은 방화로 전소됐다.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시에서는 흉하게 불탄 작품을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공공미술 관리자들이 작품을 설치만 해놓고 관리를 소홀히 해 세금이 낭비되고, 문화 향유의 기회가 버려지고 있다"며 "건축주·지자체·시민 모두 공공미술을 존중하고 아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