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代作'은 유죄

  • 박상기 기자

입력 : 2017.10.19 03:09

법원, 징역 10개월 집유 2년 선고
"조수 아닌 대작 작가에 의뢰, 덧칠만 한 작품 팔아 이득 취하고 관행 주장으로 미술계 신뢰 훼손"

'그림 대작(代作)'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72)씨가 18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는 "조씨가 그림 구매자들을 속이려 한 의도가 있었다"며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조씨는 가수와 화가 활동을 병행하면서 스스로를 '가수+화가'를 뜻하는 화수(畵手)라고 했다. 1973년부터 40여회 전시회를 열었고, 조씨의 그림 중 인기를 끌었던 '화투 시리즈'는 1점당 100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대작(代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씨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대작(代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씨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법원을 나오고 있다.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조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뉴시스
이번 사건은 지난해 화가 송모(62)씨가 '조씨가 내가 그린 그림으로 사기를 친다'고 주장해 불거졌다. 검찰은 조씨가 2011년 9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송씨 등 2명의 대작 화가가 그린 그림 26점을 자기 그림이라며 20명에게 팔아 1억8000만원을 벌었다며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조씨가 송씨에게 그림 1점당 10만원씩을 주고 200여점을 넘겨받은 뒤 간략하게 덧칠만 하거나 작가 사인만 하고 자기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고 했다.

조씨는 재판에서 "송씨 등은 그림 작업을 돕는 '조수'에 불과하고, 아이디어는 내가 냈으니 내 작품"이라고 했다. 조씨는 "앤디 워홀 같은 예술가도 조수를 썼고, 조수를 쓰는 것은 현대미술의 흐름이자 관행"이라며 "내가 세계적 미술가인지는 세계적 미술가들이 초대받는 광주비엔날레에 초대받았던 사실로 판단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송씨는 조수가 아니며, 조씨의 작품을 온전히 조씨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송씨는 미술 도구나 재료도 스스로 선택했고, 조씨는 세부적인 관리·감독 없이 비용만 부담했다"며 "송씨는 독립적으로 작품 창작에 참여한 작가"라고 했다. 이 판사는 또 "앤디 워홀 등 조수를 썼던 예술가들은 작업실을 '공장'이라 하고 스스로 '미술 CEO'를 자처하며 조수의 존재를 떳떳하게 밝혔다"며 "그러나 조씨는 이를 숨겼고 오히려 조수를 쓰는 제작 방식을 비판했다"고도 했다. 조씨가 과거 방송 등에서 '조수를 안 두고 직접 그린다' '화투 그림은 쉬워 보여도 고뇌하며 밤새 그린 작품'이라고 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 판사는 "그림 구매자들도 조씨가 직접 그린 그림인 줄 알았고, 그걸 몰랐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거라고 진술하고 있다"며 "조씨는 '조수를 쓰는 것은 미술계 관행'이라는 사려 깊지 못한 발언으로 미술계에 대한 신뢰성을 훼손하고 미술 시장에 혼란을 줬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 단계부터 논란이 컸다. 이 판사는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어 고민을 거듭했다"며 "오늘 선고가 옳다는 확신이 있지만, 불변의 진리나 유일무이한 정의라고는 볼 수 없다"는 소감을 남겼다. 조씨는 "유죄 선고가 당황스럽고, 항소하는 것을 논의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