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밖엔 누가 살길래, 문화의 향기가…

  • 신정선 기자
  • 이해인 기자

입력 : 2017.10.19 01:18

[평창동·구기동 일대 사는 문화예술인 200여명, 20~22일 '자문밖 축제']

화가·조각가 14명 작업실 개방, 김수철 등 음악인은 콘서트 열어
지역 문화 알리기 나서

34개 미술관·박물관 무료·할인
건축가 김원·미술사 이태호 강연

북한산을 낀 수려한 풍광이 영감을 주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엔 예전부터 화가나 작가가 많이 살았다. 한국화가 이종상(79)씨는 이곳 40년 토박이다. 5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신사임당 초상화가 그의 작품이다. 이씨는 20년 전 어느 날 서울 시내에서 열린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강사는 평창동 주민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었다. 다른 참석자를 살펴보니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 등 동네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이씨는 "강사도 청중도 우리 동네 사람인데, 먼 데서 보지 말고 동네에서 만납시다"라고 제안했다. 이 전 장관, 김 관장도 맞장구를 쳤다. 문화예술인사들의 자생적 지역 문화운동인 '평창문화포럼'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문화예술인이 꾸미는 지역 축제

평창문화포럼이 지역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문밖 축제'가 20~ 22일 열린다. 2013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하면서 시작해 올해 5회째를 맞는다. 축제 기간에 자문밖에 사는 화가들이 작업실을 공개하고, 음악인들은 콘서트를 연다.

지난해 10월 열린 자문밖문화축제 때 금난새 성남시립예술단 예술총감독이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앞 야외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
지난해 10월 열린 자문밖문화축제 때 금난새 성남시립예술단 예술총감독이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앞 야외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 /평창문화포럼
'자문밖'은 종로구 구기동, 신영동, 부암동, 평창동, 홍지동을 아우르는 지명이다. 한양도성의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인 창의문(彰義門)의 별칭이 자하문(紫霞門)이다. 자하문이라 한 이유는 청운동 일대가 골이 깊고 아름다워 마치 개성의 자하동같다는 뜻에서 자핫골이라 불렸기 때문이다. 자문밖은 자하문밖의 줄임말이다. 자문밖 가운데 세검정은 세차게 흐르는 계곡이 유명해 겸재 정선이 실경산수화 두 폭에 담기도 했다. 1970년대에 이 일대 택지가 개발되면서 단독주택과 빌라가 들어섰다. 한때 능금밭과 자두밭 일색이던 동네는 문화예술인이 200명 모여 사는 예술촌으로 변했다.

자문밖 축제는 이어령·이종상·김종규 3인이 중심이 된 평창문화포럼에 지인들이 가세하면서 출발했다. 자문밖 주민들인 이호재 가나아트센터 회장, 김종구 조각가, 김주원 석파랑 대표 등이 뜻을 모았다. 이종상 화가의 작업실에서 영화 취화선(2002년)을 촬영한 임권택 감독도 "평창동 주민은 아니지만 취지에 동감한다"며 포럼 활동을 했다.

포럼 이사장인 이순종 서울대 명예교수는 "예술이 주민들의 삶과 연결되면 문화적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한다는 점에 여러 예술인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전 평창동 서울예고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축제 콘서트의 지휘를 맡은 금난새(성남시립예술단 예술총감독)씨는 "학생들과 시민을 현장에서 직접 만나고 반응을 들을 수 있어 매우 소중한 기회"라고 말했다.

◇오픈스튜디오, 전시·강연 풍성

올해 축제의 개막공연은 가수 겸 작곡가인 김수철의 '기타산조와 사물놀이'(20일 오후 6시, 가나아트센터 야외공연장)다. 처음 자문밖 축제 무대에 서는 김수철씨는 "화가 임옥상씨와의 친분으로 공연하게 됐다"며 "예술인이 한데 모여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축제의 대표적인 행사인 '오픈 스튜디오'엔 화가 김병기·박항률, 조각가 김종구·라선영씨 등 14명이 참여한다. 미술작품 복원 전문가인 김주삼 C&R복원연구소 소장의 작업실에서는 훼손된 그림이 되살아나는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3년째 오픈스튜디오에 참여하는 박항률씨는 "주민과 후배에게 좋은 기회가 된다는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개인 작업실을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 기간에는 가나아트센터 등 34개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무료 혹은 할인 가격으로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건축가 김원의 '자문밖 이야기', 미술사가 이태호의 '서울산수 그 아름다움' 등 강연이 이어진다. 종로구는 무료 아트투어버스를 마련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까지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순환버스를 운행한다. 문의 평창문화포럼 사무국 (02)6365-1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