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장… 시설은 첨단, 운영은 주먹구구식"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7.09.28 03:08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 낸 유민영 서울예대 석좌교수

유민영 교수는 “극장은 도도하게 군림하지 말고 지역 주민을 위해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유민영 교수는 “극장은 도도하게 군림하지 말고 지역 주민을 위해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최근 몇십 년 동안 우리는 극장 분야에서도 압축 성장을 이뤘습니다. 전국에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공연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지요. 하지만 극장 운영 면에선 아직도 일제 때 부민관 같은 주먹구구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850쪽 분량의 신간 '예술경영으로 본 극장사론(劇場史論)'(태학사)을 낸 유민영(80) 서울예대 석좌교수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술경영'의 시각으로 한국의 극장사를 집대성한 이 책은 선행 연구가 거의 없는 미답지를 젊은 시절부터 개척해 온 유 교수 고집의 산물이다. "대학원 시절엔 지금 소공동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던 국립도서관으로 매일 가서 옛 신문철을 하나하나 뒤졌어요." 그가 신문에서 '연극사' 자료를 찾는 동안 서울대 국문과 바로 2년 선배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근처 자리에 앉아 '비평사' 자료를 찾았다고 한다.

그가 복원한 한국의 극장사는 오랜 기간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갑오경장 이전엔 비를 맞지 않으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극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합리적인 시스템과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추고 극장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란 더욱 난망이었다. "원각사 같은 초기 극장들이 왜 일찍 문을 닫았는지 아십니까? 400석 규모 극장에 단원이 170명이나 됐어요. 예술경영을 할 줄 몰라서 그랬던 겁니다."

흥미로운 건, 그런 상황에서도 꼭 필요할 때마다 유별난 인물들이 등장해서 극장사를 업그레이드했다는 사실이다. "1895년 최초의 근대 극장을 인천에 세운 정치국이란 사람은 자수성가한 엿장수였습니다. 첫 관립 극장인 협률사를 세운 인물은 판소리를 좋아한 부친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예술 애호가, 바로 고종 임금이었죠." 20세기 초 전력을 알 수 없는 박승필이란 인물이 혜성처럼 나타나 광무대와 단성사를 운영했던 것도 이채로웠다. "광무대에선 후원회를 만들고 기업과 연결해 홍보하는 현대적인 마케팅 기법을 구사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광복 이후 근대극에서 현대극으로 전환하는 상징이 된 드라마센터는 '일개 극작가' 유치진이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6만5000달러에 사재를 몽땅 투입하는 뚝심으로 지은 것이었다. 1970년대에 이르면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공간사랑이라는 공연장을 지어 '사물놀이'를 탄생시켰다.

2017년 현재 공연 예술의 하드웨어는 예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전국 230곳에 이르는 극장이 '문예회관' 등의 이름을 달고 경쟁적으로 들어섰지만,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다. "예술도, 경영도 모르는 공무원들이 시설에 걸맞지 않게 운영하니 세금만 낭비하는 셈이지요. 세계적 추세를 따라 독립 법인화를 해서 자유롭게 운영하고, 지역 관객을 위해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합니다. 거기에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같은 극장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