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판 20만장… 추억으로 가는 타임머신

  • 이해인 기자

입력 : 2017.09.21 01:48

[서울 '장수가게'를 찾아서] [1] 황학동 '돌 레코드'

75년 카세트테이프 가게로 시작… 90년대 CD 나오며 폐업 위기
중·장년, 음악 들으며 시간여행… 희귀판 많아 손님 발길 이어져
아이유 등 LP로 한정판 내면서 젊은이들도 매장 찾아

서울시가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며 역사를 간직해 온 가게 39곳을 선정해 지도를 제작했다. 30년 이상 됐거나 2대 이상 이어진 곳, 무형문화재 지정자가 운영하는 곳이다. 시는 오래된 가게를 칭하는 일본식 한자어 표기인 노포(老鋪)를 '오래가게'라는 우리말 이름으로 바꿨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영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뜻도 담았다. 역사와 가치를 품은 '오래가게'들을 소개한다.

청계천변의 중구 황학동 벼룩시장엔 40여 년 동안 중고 LP판을 판매해 온 '돌 레코드'가 있다. 1975년에 간판도 없는 카세트테이프 가게로 문을 열었다. 1980년대 LP 전성기에 중고 레코드판을 들여와 젊은 층의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CD 시대가 열리면서 당시 돌 레코드 주변에 있었던 레코드 가게들은 대부분 폐업해 지금은 돌 레코드와 바로 옆 장안레코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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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중구 황학동 만물시장의 돌 레코드에서 주인 김성종씨가 중고 LP판을 정리하고 있다. 1975년 카세트테이프 가게로 출발했던 이 가게는 40여 년 동안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돌 레코드는 두 건물 사이에 난 길에 지붕을 씌워 운영하고 있는 형태다. 20일 찾은 이곳엔 LP 20여만 장이 가득했다. 길고 좁은 통로에서 60대 남성이 쪼그려 앉아 물을 묻힌 극세사천으로 레코드의 먼지를 닦고 있었다. 가게 주인 김성종(63)씨였다. 그는 "하루 한두 명이라도 찾으러 오는 손님을 위해 매일 LP판을 정리한다"고 했다.

이 가게는 40여 년 전 목재 사업을 하다 실패한 김씨의 아버지를 대신해 행상을 하던 어머니가 빚을 얻어 냈다고 한다. 4형제 중 첫째였던 김씨는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려고 어머니와 가게를 꾸렸다. 1990년대 LP판 대신 작고 편리한 CD가 인기를 끌자 김씨 가게 주변에 있던 레코드 매장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하지만 돌 레코드는 LP판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곳들이 폐업할 때 명맥을 유지하다 보니 20여만 장이나 되는 중고 LP를 모을 수 있었다. 판소리 명창 임방울(1904~1961년) 선생의 수궁가(1976년)는 애호가들 사이에선 수백만원에 거래되는 명반으로 꼽힌다.

돌 레코드
돌 레코드엔 이런 희귀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김씨는 "이문을 남기는 장사는 못해도 우리 가게를 찾아온 손님들이 추억을 떠올리는 걸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또 "작고 편리하지만 음색이 차갑고 날카로운 CD와 달리 LP판은 사람들이 듣기에 편안하다. 이런 LP판을 쉽게 놓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오래된 매장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1980년대 추억을 좇는 중·장년층이다. 말없이 들어와 LP판을 들여다보다 매장 가운데에 있는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걸고 음악을 듣다 가는 손님, LP판 한 장을 들고 김씨에게 30~40년 전 얘기를 꺼내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김씨는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레코드를 보며 옛 시간과 공간을 떠올린다"며 "낡고 허름하지만 손님들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비밀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 김씨의 매장엔 젊은이들도 찾아온다. 최근 아이유나 버스커버스커 등 젊은 가수들이 외국 제작사를 통해 LP로 한정판을 내면서 오랫동안 대중의 외면을 받아 내리막길을 걷던 LP판이 부활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는 LP판을 제작하는 공장이 성수동에 새로 문을 열기도 했다. 우리나라 마지막 LP제작사였던 서라벌레코드가 2004년 폐업한 지 13년 만이었다. 김씨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LP판이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