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 탭댄스처럼… 경쾌한 '춘향'의 발놀림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7.09.20 03:01

국립무용단 신작 '춘상' 올리는 정구호 연출가·배정혜 안무가

이름만 듣고도 기대하는 경우가 있다. 매진 열풍을 일으킨 국립무용단 '묵향' '향연'에 이어 국립오페라단 '동백꽃 아가씨'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55)와 50여년간 한국 창작무용계를 개척하며 '무용계 대모'로 불리는 안무가 배정혜(73)의 만남. 21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무용단의 신작 '춘상(春想)'이다.

‘춘상’의 정구호(왼쪽) 연출가와 배정혜 안무가.
‘춘상’의 정구호(왼쪽) 연출가와 배정혜 안무가. /성형주 기자
"가장 모던한 21세기 버전의 춘향전 탄생"(정구호) "일흔 넘어 만들었지만 내 인생 최고의 젊은 감각"(배정혜)이라는 둘의 말대로 이번 무대는 기존 한국 무용에서 익숙했던 문법을 찾기 힘들다. 해오름극장의 회전 무대 위엔 주인공들의 집과 공항을 표현한 건축 조형물이 들어섰다. 의상 역시 한복을 벗고 마치 발레나 현대 무용에서 본 듯한 느낌.

음악은 한 술 더 뜬다. 전통 음악 반주가 아니라 아이유·정기고·볼빨간 사춘기 등 가요를 썼다. 드라마 '겨울연가', 영화 '올드보이' '건축학개론'에 참여했던 이지수 작곡가가 '요즘 노래'를 만들었다. 의상·음악·건축·실내장식 등을 함께 선보이는 패션쇼를 수십 년간 이끌어온 정구호 연출가의 감각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주인공 춘과 몽의 이야기를 담은 국립무용단의 신작‘춘상’은 가요에 한국 무용을 입혀 한층 세련되고 경쾌하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주인공 춘과 몽의 이야기를 담은 국립무용단의 신작‘춘상’은 가요에 한국 무용을 입혀 한층 세련되고 경쾌하다. /연합뉴스
리허설 현장을 지켜보던 배정혜는 "춤이 잘 보여요"라며 크게 웃었다. 공연 준비가 막 시작됐던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정구호 선생의 연출에 가려 춤이 안 보이면 어쩌나"라고 한숨부터 쉬었던 그다. "그간 정구호 선생의 작업을 보면서 혼자 '사모'해왔다(웃음). 주변의 일부 우려가 있었지만 믿었다. 전체를 맞춰 보니 상상 이상으로 춤이 더 도드라진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배정혜는 지난 2000~2002년과 2006 ~2011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을 지내면서 '신라의 빛' '춤, 춘향' 'Soul, 해바라기' 등 창작 안무를 선보였다. 춘향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춤, 춘향'은 국립무용단 최초로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했고, 독일 재즈 그룹 '살타첼로'가 음악을 맡은 'Soul, 해바라기'를 통해 '가장 문학적인 무용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예술평론가 박용구(1914~2016)가 "뚝배기가 아닌 일본 접시를 들어도 한국적으로 구현해내는 예술가"라고 표현한 안무가다.

처음엔 '춤, 춘향'을 개작하려 했지만 정구호 연출가가 다른 의견을 냈다. "배정혜 선생님은 한국 무용계에서 가장 모던한 심장을 지니신 분이다. '춤, 춘향'을 손대면 원작의 아름다움을 훼손할 것 같아 춘향전을 요즘 이야기로 각색한 무용극을 만들자고 했다." 이번 작품은 남녀 주인공의 만남, 이별, 재회와 언약 등 1막 8장으로 구성된다. 국립무용단 간판스타인 김병조와 조용진, 송지영과 이요음 등 남녀 주인공과 무용단원 30명이 무대를 만든다.

'이것이 한국 무용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고 발랄하다. 발놀림은 마치 탭댄스 같다. 뮤지컬 '그리스' 등이 연상되기도 한다. 배정혜 안무가는 "승무나 살풀이를 출 때 하는 호흡인 눌러짓기, 밀기, 족두치기 등 한국적 호흡이 모두 들어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막에 등장하는 머리채 춤은 전통 상모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요즘엔 그걸 '헤드뱅잉'이라 부르더라. 전통과 모던은 이처럼 맞닿은 부분이 많다. 새로운 희망을 봤다."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