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9.07 01:19
[공연 리뷰] 벤허
영화 속 전차경주·해상 전투 장면, 홀로그램 영상·회전무대로 재현
잘 알려진 영화를 뮤지컬 무대로 옮긴다는 건 큰 부담이다. 게다가 그 영화가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하고, 영화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명장면을 남겼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창작 초연 뮤지컬 '벤허'(연출 왕용범)는 '벤허' 하면 떠오르는 해상 전투와 전차 경주 장면 때문에 과연 무대 예술로 어떻게 표현될지가 관건이었다.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2014)으로 초연 첫해 8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긴 왕용범 연출이 과연 '2타석 연속 홈런'을 쳐 낼지도 관심사였다.
뮤지컬은 우리에게 익숙한 찰턴 헤스턴 주연 영화(1959)만큼의 스펙터클은 덜하지만, 무대라는 공간의 한계에서 오는 태생적 불리함을 영상과 무대 장치로 영리하게 극복해냈다. 해적과 벌이는 해상 전투 장면의 경우 난파한 배의 노예였던 벤허가 로마의 사령관 퀸투스를 구하는 장면을 와이어 영상으로 처리해 실제 물속에 있는 듯 시각을 자극했다. 전차 장면에 등장한 여덟 마리 말은 영국 연출가 톰 모리스의 연극 '워 호스'에서 선보였던 실제 크기의 말을 연상시켰다. 각각의 관절을 움직이며 회전 무대를 돌다 불꽃을 일으킨다. 원형 경기장 홀로그램 영상을 빠르게 움직여 속도감을 높인 시도가 눈에 띈다.

벤허의 감정선도 좀 더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어릴 적 친구에서 서로 원수처럼 등지는 벤허와 메셀라의 대결이나, 귀족에서 노예로 전락했다 다시 영웅으로 떠오른 벤허가 예수를 통해 사랑과 용서를 품는 드라마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했다.
영화 속 하이라이트가 '전차 경주'였다면 뮤지컬에선 2막 마지막 즈음 등장하는 '골고다 언덕' 장면이 압권이다. 회전 무대와 붉은빛이 감도는 언덕 영상을 이용해 마치 언덕을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골고다에서 실제로 채찍을 맞는 장면에서 예수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관객에게 표정이 보이지 않아도 상대 배역을 압도했던 원작의 묘미가 섬세하게 재현됐다. 번민과 복수, 용서를 오가며 굴곡진 삶을 사는 벤허가 막판 절규하며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은 우리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대신하는 듯 묵직한 울림을 준다. 총제작비 65억원. 벤허 역은 유준상·카이·박은태가, 메셀라는 민우혁·최우혁·박민성이 연기한다. 10월 29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