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의 자연스러운 모차르트 들려주고 싶어요"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7.09.06 03:04 | 수정 : 2017.09.06 08:51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첫 음반 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모차르트·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獨서 녹음
26일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

"예전엔 모든 게 바이올린 중심… 이젠 꽃꽂이도 하며 일상 즐겨"

"발매되고 나서 하루 뒤, 인터넷에서 14유로를 주고 제 음반을 주문했어요. 사흘 만에 독일 집으로 배송받았는데 완전 감격했죠. 제 음반을 아마존이란 엄청난 시장에서 사다니! '택배원은 이게 내 음반이란 걸 알까?' 하면서요(웃음)."

2015년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2)이 첫 음반을 냈다. 모차르트가 바이올린을 위해 쓴 소나타 스물여섯 곡 가운데 아름답기로 유명한 18번과 26번, 파리에서 갑작스레 어머니를 여읜 슬픔을 담은 21번과 그로부터 10여년 뒤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숨결을 이어받아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등 네 곡을 수록했다. 지난 7월 7일 워너 클래식을 통해 세계에 선보였고, 국내에서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해 지난 1일 발매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임지영은 연주자의 삶을“도착 지점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에 비유했다.“ 꾸준히, 열심히 하려는 마음자세가 중요할 뿐이죠.”그녀가 쥔 바이올린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에게 4년간 부상(副賞)으로 주어지는 1708년산(産) 스트라디바리우스‘허긴스(Huggins)’다. /김지호 기자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문호아트홀에서 만난 임지영은 "콩쿠르 끝나고 수많은 연주를 소화했지만 음반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다"고 했다. 기회는 지난해 3월 꿈처럼 날아들었다. 해외 투어에서 막 돌아와 졸린 눈을 비비며 나간 점심 자리. 뜻밖에 워너 클래식 사장 알랑 랑세롱이 환히 웃으며 명함을 내밀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 여덟 달 만인 지난해 12월 베를린의 텔덱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욘 페데르슨이 참여한 가운데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나흘간 녹음했다. 두 사람은 오는 19~27일 서울·대전·화성·청주에서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모차르트 소나타 18·26번과 더불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를 들려준다.

지난 2년, 일상은 "천지가 요동칠 만큼" 달라졌다. 날마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도시로 날아가 연주했다. "우승자라는 수식어에 걸맞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죠." 그래서 지난 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작은 마을 크론베르크로 거처를 옮기고,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아카데미엔 다니엘 바렌보임, 이츠하크 펄먼, 기돈 크레머 등 거장들이 수시로 찾아와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마우리치오 푹스가 해준 조언은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 "저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끝까지 듣더니 말했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이 네게 충고를 던질 텐데 일일이 귀담아듣지 마라. 네 음악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으면 참고하고, 아니면 과감하게 흘려버려라. 네 음악의 주인은 너야.'" 임지영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몰아치던 시절, 비로소 자아를 찾은 느낌에 눈물이 솟구쳤다"고 했다.

스승 김남윤의 가르침도 되새겼다. "신발을 질질 끌고 다니면 연주도 질질 끈다, 밥 먹을 때 쩝쩝거리면 음악도 지저분하게 한다…. 그 사람의 말과 생각 모든 게 다 음악에서 나타난다고 가르치셨어요." 예전엔 모든 게 바이올린 중심이었다. 1분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이젠 바이올린을 놓을 때면 음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집 안을 청소하고 가구 배치를 바꾸고 장을 본다. "동글동글 귀여운 작약으로" 꽃꽂이도 즐긴다.

스물둘 꽃다운 바이올리니스트는 뜻밖에 "내가 원하는 소리는 '아저씨' 같은 소리"라고 했다.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처럼 인간적인 소리. 왠지 소리만 들으면 배도 좀 나오고 귀엽게 생긴 할아버지일 것 같은, 그만큼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소리를 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