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전문 배우? 무대 밖에선 배려의 아이콘"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7.08.03 03:01

[뮤지컬 배우 김수용 인터뷰]

드라마 '간난이' 아역 배우로 인기
'은밀하게… '서 北특수부대 교관, '나폴레옹'선 권모술수 달인으로
노래부터 춤까지 독학으로 익혀 "아역 출신 떼고 진짜 배우 돼야죠"

드라마 ‘간난이’(1983)에 나온 김수용.
드라마 ‘간난이’(1983)에 나온 김수용.
요즘 뮤지컬계에서 악역을 잘 소화하는 배우로 김수용(41)이 첫손에 꼽힌다. 지난달 15일 개막한 뮤지컬 '나폴레옹'(10월 22일까지)에선 나폴레옹을 정치 무대에 올렸다 몰락시키는 권모술수의 달인 '탈레랑'을,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10월 8일까지)에선 최정예 스파이를 만든 북한 특수부대 교관 '김태원'을 맡아 악인의 면모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깊은 눈매에 다양한 표정, 시원한 발성으로 무대를 사로잡는다. 34년 연기 내공은 매끄럽지 않은 극의 전개도 유연하게 설득시킨다.

김수용은 아역 배우 출신이다. 일곱 살 때 출연한 드라마 '간난이'에서 전쟁고아 영구 역을 맡아 시청자들 눈물을 쏙 빼놨던 주인공이다. 방송사 PD 출신인 아버지 소개로 드라마 '세 자매'(1983)로 데뷔한 김수용은 '간난이'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빡빡 깎은 머리에 눈물 그렁그렁한 큰 눈으로 때로는 심통을 부렸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누나 간난이(김수양)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전쟁통 꼬마를 그대로 브라운관에 옮겨온 듯했다. 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수용은 오디션에 숱하게 떨어졌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아역 배우 출신이라는 게 양날의 검이에요. 극복하기 정말 힘들었죠. 군대 다녀온 뒤 오디션을 보는데 보는 족족 떨어졌어요. '이름값'이라며 작은 역할도 안 들어왔지요. 연기는 너무 하고 싶은데 방법이 보이지 않았어요. 부모님께 '연기 그만두겠다. 앞길이 안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를 구해준 게 뮤지컬이었다. "그때 어머니가 '산도 꼭대기에 다다를수록 힘들다. 안 올라가 보고 미리 포기할 필요 없다'고 하셨지요.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러다 유준상·노현희·임춘길 등 뮤지컬 스타들이 출연한 '더 플레이'(2001)를 보게 됐는데 '이거다' 싶었지요."

강렬한 눈빛이 특징인 16년 차 뮤지컬 배우 김수용(41). 어린 시절 드라마 ‘간난이’의 전쟁고아 영구로 시청자의 뇌리에 깊이 박혔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강렬한 눈빛이 특징인 16년 차 뮤지컬 배우 김수용(41). 어린 시절 드라마 ‘간난이’의 전쟁고아 영구로 시청자의 뇌리에 깊이 박혔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김지호 기자

노래와 춤은 독학으로 공부했다. 처음 보는 연출가에게 찾아가 "대본과 악보를 꼭 보여 달라"고 매달렸다. "그만큼 절실했으니까요. 이걸 못 해내면 배우 되기 그른 거라고 생각했죠. 아버지는 '네 고향이 드라마인데, 무대라는 새로운 장르를 책임질 수 있겠느냐'며 걱정하셨지만 그럴수록 꼭 해내고 싶었어요."

오디션을 통해 2002년 뮤지컬 '풋루스'에서 주인공을 따냈다. 그 뒤 '렌트'의 에이즈 환자, '뱃보이'의 박쥐소년, '헤드윅'의 트랜스젠더 등 독특한 배역을 소화했다. 2005년에는 '뱃보이'로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도 받았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매니지먼트사 없이 혼자 다녔다. 맨땅에서의 단련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스태프, 동료 배우 할 것 없이 열이면 열 칭찬하는 '성실과 배려의 아이콘'이 됐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탈진할 정도로 에너지를 쏟아내는데 "객석에서 환호 보내주고 한둘이라도 분장실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 덕분에 다시 힘이 솟는다"고 했다.

"앞으로는 눈물 쏙 빼는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불쌍해 보이는 역할은 잘했거든요(웃음). 역경과 암초의 아이콘이었죠. 뮤지컬·TV·영화 가리지 않고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면 언제든 들어가고 싶어요. '배우'는 남들이 인정하고 칭송하며 하사하는 '작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종착역에 닿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