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右 편 갈라 비난…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다른가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7.07.22 03:01

[올해 최고의 연극으로 주목… '1945' 배삼식 작가 인터뷰]

차범석희곡상 등 휩쓴 스타 극작가, 광복 직후 인간 군상 다룬 新作
"각자의 삶 치열하게 살아갈 뿐… 절대적으로 악한 사람은 없어"

"촛불과 태극기가 첨예하게 맞섰던 최근의 세태를 보며 참 안타까웠어요. 타인을 충분히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멋대로 하는 모습…. 이분법의 틀 안에 우리를 가두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집필에 속도를 냈습니다."

극작가 배삼식(47)이 신작 '1945'로 3년 만에 대중 앞에 섰다. '열하일기만보' '하얀 앵두' '3월의 눈' '먼 데서 오는 여자' 등 썼다 하면 평단과 팬들을 열광시킨 그가 이번엔 광복 원년 1945년에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왔다. '대산문학상' '차범석희곡상' 등 여러 상을 품에 안았지만 '1945'가 '올해의 작품'이 될 것이란 평가엔 이견이 없다. 관객들 요청에 국립극단은 '1945'의 희곡선(7000원)도 내놨다.


 

연극 ‘1945’를 쓴 극작가 배삼식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앉았다. 배삼식은 “정체성, 기억, 욕망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간이 지닌 여러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극 ‘1945’를 쓴 극작가 배삼식이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앉았다. 배삼식은 “정체성, 기억, 욕망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간이 지닌 여러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20일 서울 명동 예술극장에서 만난 배삼식은 "우리가 함부로 남의 인생에 대해 윤리적·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라는 의문부호로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같은 시대를 다룬 다른 작품들, 당시를 살아냈던 이들의 구술을 연구하면서 해방 후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시대적·공간적 배경에 주목하다 보니 1945년 만주에 모인 사람들에게 집중하게 됐지요."

30일까지 무대에 오를 이번 작품의 배경은 1945년 해방 소식이 전해진 뒤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머물던 전재민(戰災民) 구제소다. 명숙은 위안소에서 '지옥'을 공유한 일본인 미즈코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위안소 포주였던 한국 여성은 '새 삶'을 찾겠다며 명숙과 미즈코에게 자신을 모른 척해 달라고 부탁한다. 자식을 일본인 학교에 보내놓고 일본인을 경멸하는 한국인 부부도 등장한다. 친일과 반일, 부역과 저항 사이에서 어느 한 쪽에 확실히 속하지 못한 채 부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다만 배삼식은 저마다의 사연을 통해 그들이 생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관조적인 시선으로 묘사한다. "선악을 떠나 모두가 살려고 발버둥치면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입니다.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이란 없지요. 적과 나를 당위적으로 가르는 게 논리와 이성이라는 껍질만 썼을 뿐 결국은 폭력성과 맞물리는 거였어요."

보통 탈고한 원고를 바꾸는 일은 없지만 이번엔 무대에 올리기 전 딱 한 장면을 새로 썼다고 말했다. 그의 원고를 제일 먼저 읽어주고 날카로운 평을 해주던 아내이자 배우 이연규씨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지난 5월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명숙이 언덕에 올라 "산 사람은 뭐 영영 사나? 언제든 한 번 가는 건 마찬가지지. 결국엔 혼자 가야 하는 건데, 뭐"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내가 병상에서 그에게 한 말이다. "어느 시대이든 어떤 관념이나 판단을 중지하고 인간의 숭고함을 간직하며 타인에게 손 내미는 예외적인 인간들이 존재합니다. 그런 이들을 극 속에 담고 싶었죠. 연극은 교실이기도 하지만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편하게 오셔서 즐길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