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7.13 03:05
[연극 리뷰] 1945
3년 만에 나온 배삼식 창작 희곡
광복 직후 여러 인간 군상 그려… 현재 세대 격차·이념 갈등 은유
광복 직후 1945년. 누군가에겐 또렷하게 새겨진 삶의 기억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에겐 교과서에서나 마주했을 시대다. 각자의 기억 속에 편집돼 존재할 그해가 극작가 배삼식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입었다. 국립극단 연극 '1945'를 통해서다. 2015년 '먼 데서 오는 여자'로 차범석 희곡상을 받는 등 연극계를 대표하는 극작가인 배삼식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인간애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배삼식은, 광복 직후 여러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관객들을 그 시절로 순간 이동시킨다.
1945년 광복 직후 만주 전재민(戰災民) 구제소. 일본군 위안소에서 '지옥'을 견뎌낸 이명숙(김정민)과 일본인 미즈코(이애리)는 조선인만 탈 수 있는 기차를 타고 조선으로 돌아가려 한다. 명숙은 미즈코가 일본인인 걸 숨기기 위해 말을 못하는 동생 미숙이라고 둘러대지만 살얼음판이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등장인물들은 모호하고 위선적이다. 명숙과 미즈코를 위안소에서 괴롭힌 포주 박선녀(김정은)는 정체를 숨기고 거리에서 만난 장수봉(박윤희)과 새 출발을 꿈꾼다. 구제소 '반장' 같은 역할을 한 구원창(백익남)·김순남(성여진) 부부는 아이들을 일본 소학교에 보내놓고도 일본인을 경멸한다. 독립운동가 형 때문에 집안이 몰락했다며 원망하는 오영호(홍아론)도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배삼식은 구체성이 결여된 당시를 복원하기 위해 채만식의 '소년은 자란다', 염상섭의 '삼팔선', 김만선의 '한글강습회' '이중국적' 등의 소설과 당시 신문 기사, 연구서를 파고들었다. 살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는 당시 사람들의 삶에 확대경을 들이대며, '우리가 함부로 타인의 삶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다. 몰아세우고, 손가락질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비정한 모습은 오늘날의 세대 격차·이념 갈등을 은유하는 듯도 하다. 연극평론가 신현숙은 "역사의 뒤안길에 있는 것들을 때로는 절절하게 담담하게 짚어냈다"고 말했다.
창작 희곡이 드문 요즘 '올해의 수확'이라는 평도 나왔다. 연극 평론가 허순자는 "연출의 묘는 다소 아쉽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자세로 몰입하는 모습에서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