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몰라도… 내가 만든 노래는 다 아실걸요"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7.07.06 03:01

[내일 개막하는 뮤지컬 '시라노'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외모는 부족하지만 사랑엔 적극적 詩 쓰는 검객 '시라노' 다룬 작품
가수 휘트니 휴스턴 노래로 주목… 지킬앤하이드·드라큘라 등 작곡
"난 아직 '학생', 지금도 배우는 중"

‘시라노’의 음악을 맡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시라노’의 음악을 맡은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이태경 기자

"가장 좋아하는 희곡 '시라노'의 음악을 만들면서 제가 마치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어요. 외모는 조금 부족하지만, 시인이면서 유머러스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데 적극적이죠.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전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뮤지컬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Wildhorn·59)이란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노래는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주요 곡인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이나 '한때는 꿈에(Once upon a dream)' 같은 노래를 만든 주인공이다. 그 외에도 '황태자 루돌프' '스칼렛 핌퍼넬' '드라큘라' 등 국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 뮤지컬을 작곡했다.

와일드혼이 또 한 번 '대작'을 들고 한국 팬을 찾았다. 7일부터 10월 8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시라노'를 한국 초연한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함께 만들었던 레슬리 브리커스(86)가 대본과 작사를 맡았다. "제 멘토이자 '음악적 아버지'인 레슬리와 함께하게 돼 큰 힘이 됩니다. '거인을 데려와(Bring Me Giants)'라는 노래는 '지금 이 순간' 못지않게 '터지지(bomb)' 않을까 생각되죠(웃음). 주인공이 함께 부르는 '안녕, 내 사랑(Farewell My Love)'은 오페라 '푸치니'처럼 아름다운 슬픔을 담았습니다."

뉴욕 출신으로 음악을 사랑한 아버지 덕에 라흐마니노프, 차이콥스키, 드뷔시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때 수상 구조 대원으로 취직했지만 음악이 그를 불렀다.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작곡과 연주를 밥 먹듯 했다. 1988년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Where Do Broken Hearts Go'가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면서 주목을 받았다. 컨트리 가수 케니 로저스, 내털리 콜 등과 작업했고, 올림픽과 수퍼볼, 월드컵 무대 등에도 그의 곡이 연주됐다.

뮤지컬 ‘시라노’에서 ‘검객’이자 ‘사랑꾼’인 주인공 시라노 역할을 맡은 가수 김동완이 펜싱 연습을 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류정한이 제작을 맡은 이번 뮤지컬에서 시라노 역은 류정한과 홍광호, 김동완이 번갈아 맡는다.
뮤지컬 ‘시라노’에서 ‘검객’이자 ‘사랑꾼’인 주인공 시라노 역할을 맡은 가수 김동완이 펜싱 연습을 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류정한이 제작을 맡은 이번 뮤지컬에서 시라노 역은 류정한과 홍광호, 김동완이 번갈아 맡는다. /CJ E&M

"음악엔 국경이 없다"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와는 악연이다. 1997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지킬 앤 하이드'가 4년 넘게 공연되며 호평을 받기도 했지만 쇼 자체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보니 앤 클라이드'나 '남북전쟁'은 혹평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다. 그는 오히려 담담했다. "주위에서 '넓은 세상이 있는데 왜 갇혀 있느냐'고 말했죠. 저를 강하게 해주는 힘이 됐고요."

'뭐든지 OK'라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그의 아버지는 전쟁 중 다발성 근육경화증 진단을 받아 평생 투병해왔지만 불평이란 없었다. 대신 아들에게 "목표를 세우고, 한 가지라도 이룬다면 실패한 인생이라 볼 수 없다"고 조언했다. "아버지 덕분에 인생에 두 가지 목표를 세우게 됐습니다. 하나는 서른 전에 넘버원 히트송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마흔 전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보는 것이었죠. 전 행운아예요. 물론 아직도 배우는 중입니다. 제 철학은 '학생'이 되자는 겁니다."

한국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그는 "한국 뮤지컬 수준은 세계적"이라며 "내 오랜 친구인 (류)정한을 비롯해 (박)효신, (김)준수, (홍)광호 모두 세계 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다"고 했다. 뼈 있는 진단도 잊지 않았다. "뉴욕에선 스타들이 연습실에 제일 먼저 도착해 가장 많은 연습을 하는 데 비해 한국 스타들은 워낙 바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