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속 그녀들처럼… 사랑도 이별도 더 경험해볼 걸"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7.07.04 03:05

[뉴욕 메트서 활약 캐슬린 김, 5~6일 서울시향 무대 올라]

콧대 높은 메트서 살아남으려 말 안 하고 수화·문자만 쓴 적도
"커리어는 있다가도 없는 것… 오페라에만 매달렸던 삶 아쉬워… 요즘엔 인터넷·와인도 즐겨요"

방 안의 절반을 차지한 그랜드 피아노와 창문 너머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한양대 음대 3층 연구실. 방 주인은 화려한 고음과 기교가 특징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캐슬린 김(42·한국명 김지현)이다.

캐슬린 김이 5~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선다. 서울시향(지휘 이브 아벨)이 연주하는 카를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에 독창자로 참여해 스물다섯 곡 중 네 곡을 부른다. "짧지만 어렵고 까다로운 노래들이에요. 열정적 사랑과 정적인 사랑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열정적 사랑을 택하고, 마지막엔 당신에게 내 모든 걸 준다며 높고 아름다운 음을 내죠."

캐슬린 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11년째 활약 중인 캐슬린 김은 소탈한 프리마돈나였다. 그녀가 입은 붉은색 리넨 원피스는 고터(강남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산 3만원짜리, 인터넷 최저가 쇼핑도 즐긴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그녀는 2007년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바르바리나 역으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 데뷔했다. 지난 5월 '장미의 기사' 소피 역까지 11년 동안 메트 오페라 총 10편에 64회 출연했다. 내년 4월엔 '신데렐라' 출연이 확정돼 있다. 유럽으로도 무대를 넓혀 지난해 8월에는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한여름밤의 꿈' 티타니아 역으로 호평받았다.

메트는 데뷔 자체도 어렵지만 설사 간판 성악가라도 전속 아닌 프리랜서 체제이기 때문에 다음 시즌 출연을 요청받기가 쉽지 않다. 그녀의 생존 전략은 '배짱'이었다. "메트에서도 처음엔 무명의 동양 애가 와서 하니까 지휘자나 연출자들이 만만한 저를 지적했어요. 어쨌든 무대에서 사람들이 보는 건 나. 연습 땐 지시를 따르다가도 무대에 나가선 내 맘대로 하면서 내가 최고인 걸 보여줬죠."

또 하나 생존 비결은 '몰입'이었다. 삶을 노래에만 쏟아부었다. "말을 안 했어요. 집에서도 수화나 문자를 썼죠. 해외에 공연하러 가면 숙소에만 머물렀어요. 사람도 안 만나고, 목이 조금만 이상하면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메트의 간판스타'로 통하던 홍혜경은 메트에 데뷔한 그녀에게 "아기를 낳으라"고 조언했다. 노래 말고도 자신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면서. 당연히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겨우 메트에 섰는데, 경력을 포기하라는 것인가.

이미지 크게보기
2010년 2월 메트에서‘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 체르비네타로 출연한 캐슬린 김(가운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그후 10년. 마흔을 넘기고 오페라 가수로서 영예를 누리면서 그녀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지나간 시간이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아요. 커리어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저의 모든 재밌는 삶을 버리고 오페라에만 매달렸는데 그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었어요. 오페라는 우리 삶을 바탕으로 쓴 극. 사랑하고 미워하고 슬퍼하는 이야기인데 그걸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이히 리베 디히(당신을 사랑해)'를 어떻게 부르겠어요."

2015년 9월 한양대 교수로 한국에 돌아왔다. 제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캐쌤(캐슬린 김 선생님)~!"이라고 불린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들을 조금씩 하고 있다. 몸매를 관리하기 위해 아침에 눈 뜨면 몸무게부터 재고, 와인도 즐겨 마신다. 잠들기 전엔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책을 본다. 어젯밤 읽은 책은 무엇이냐 물으니 그녀가 폭소를 터뜨렸다. "아, 창피한데. (양창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쓴)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예요. 직접 골랐죠." 캐슬린 김은 "스스로를 옭아맸던 그물들을 벗어젖히고 나니 오페라 속 여인들의 삶과 사랑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무대 위에서 제가 살아내는 건 그녀들의 인생이거든요. 웃음도 눈물도 지독한 외로움도 이젠 노래를 풍요롭게 해준다는 걸 알게 됐죠.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애를 낳을 걸." 그의 삶과 노래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카르미나 부라나=5~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8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