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 환갑… 700개 인생 살았다"

  • 이태훈 기자

입력 : 2017.06.30 03:04

[데뷔 60주년 영화배우 김지미, 다음달 12일까지 특별상영展]

확인된 출연작 숫자만 370편… 기록 불명확… "두 배는 더 될 듯"
제작사 설립, 군사정권 검열 저항 "흥미만 좇는 요즘 영화 아쉬워"

"700편 영화의 주인공을 했다는 건, 700개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동안 참 신나게,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배우 김지미(77)는 "오로지 영화만 60년을 따라다녔으니 '영화 나이' 환갑인데, 제 스스로 '참 기특하구나' 하는 생각을 간혹 한다"고 했다. 우리 영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가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KOFA)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다음 달 12일까지 계속되는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상영전 개막에 앞서 마련된 자리다.

영화배우 김지미
데뷔 60주년을 맞은 김지미는“영화를 찍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백 살이 넘어도 철이 안 날 것 같다”고 했다. /뉴시스
KOFA 통계로 확인되는 그의 출연작은 370편. 하지만 김지미는 "기록에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 저는 그 두 배는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직 저는 철이 안 났어요. 영화를 찍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았고, 백 살 넘어도 철은 안 날 것 같아요." 그는 "계속 배우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징검다리도 건너보고 자갈밭이나 흙길도 걷고…. 그렇게 살려고 한다"고 했다.

서울 명동에서 우연히 김지미를 본 김기영(1919~1998) 감독이 그의 데뷔작이 된 영화 '황혼열차'에 캐스팅하며 "사람이 어떻게 저리 예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유명 배우가 여러 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하는 게 흔했던 시대.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출연작마다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춘향전'(1961) '하숙생'(1966) '춘희'(1967) '길소뜸'(1985) '티켓'(1986)…. 모두 쟁쟁한 명장들과 함께한 시대의 대표작들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배우는 영화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소재입니다. 아무 데나 허투루 명예를 팔지 말고, 스스로를 소중히 해야 좋은 영화도 찍을 수 있어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1975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모습.
1975년 대종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모습. /연합뉴스
시나리오 단계부터 완성본까지 사전 검열로 필름이 가위질당하던 시대였다. 1984년 당시 복잡한 정치 상황에 종교계 반발이 겹치면서 영화 '비구니'의 제작이 중단됐을 땐 임권택 감독, 정길성 촬영감독과 함께 전국을 떠돌며 방황하기도 했다. "그래서 제작사 '지미필름'을 세웠죠. 검열 무사 통과하는 액션 영화, 깡패나 유흥가 떠도는 여자들 얘기가 아니라 사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군사정권 검열기구에서 영화 '티켓'을 12군데나 잘라내 누더기로 만들었을 땐 "그냥 폐기 처분하겠다"고 버텼고, 결국 삭제를 최소화해 개봉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이번 특별전에서 삭제 부분을 복원해 상영한다.

그는 "김진규, 최무룡부터 이영하까지 수많은 최고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했다. 아마 영화감독을 가장 많이 데뷔시킨 여배우도 저일 것"이라며 웃었다.

요즘 우리 영화에 대해, 그는 쓴소리와 칭찬을 동시에 했다. "주로 액션 위주로 관객의 입맛에 맞춰 흥미만 좇는 '혼이 없는 영화'가 보여요. 영화는 때로는 시청각 교육이고,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더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김지미는 "그럼에도 요즘 후배들이 영화를 참 잘 만들고, 세계적으로 우리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고 넓은 시장에 진출하는 데 선배로서 박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이날 개막식에 참석 예정이었던 배우 신성일(80)씨는 불참했다. 최근 암 진단 소식이 알려진 상황. "신성일씨가 '내가 가면 주인공에게 폐가 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동년배 중에 그분만큼 활력이 넘치고 건강 관리에 철저한 분도 없어요. 꼭 이겨내실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