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29 03:01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선우예권]
8번째 도전 만에 最高 대회 정상… 副賞으로 '1만 달러 쇼핑' 즐겨
콩쿠르 실황 음반 8월에 발매
선우예권(28)은 피아노를 처음 만난 여덟 살의 기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제 몸집보다 큰 피아노와 더불어 스무 해를 씨름했고,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州)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5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선우예권은 한국인 최초로 1위를 했다. '피아노의 전설' 라두 루푸가 1966년 우승한 피아노 전문 경연 대회다.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선우예권은 "인생에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참가했던 대회에서는 준비를 충실히 못 해 늘 아쉬웠다. 서른을 넘겨 콩쿠르에 못 나가는 때가 오면, 오점으로 남을 것 같았다"고 했다. 1년 전부터 이 대회에 매진하느라 볼살이 쑥 빠져 있었다.

서울예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선우예권은 2005년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했다. 줄리아드음악원 대학원을 졸업할 땐 루빈스타인상을 받았고, 지금은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다. '콩쿠르 부자(富者)'라고도 불린다. 2015년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 1위에 올랐고, 2014년 방돔 프라이즈, 2013년 센다이, 2012년 윌리엄 카펠과 피아노 캠퍼스, 2009년 인터라켄, 2008년 플로리다까지 국제 콩쿠르 일곱 대회에서 우승했다. "당시에는 연주 기회를 얻겠다는 생각보다 상금이 절실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었죠."
이번 대회는 의미가 달랐다. 삶에서 거의 마지막 콩쿠르였다. 프로 연주자가 계급장 떼고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여섯 배 이상 심혈을 기울였다. 1차 땐 괜히 왔나 싶은 데다 떨리고 부담스러워서 그만두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반 클라이번은 입상자를 전폭 지원한다"며 그는 활짝 웃었다. 영국 매니지먼트 '키노트'가 같이해 유럽 진출 길도 열렸다. 3년간 미 전역을 돌며 연주할 수 있는 기회 못지않게 값진 부상(副賞)도 따랐다. 콩쿠르 후원사인 미국의 고급 백화점 니만마커스에서 즐긴 근사한 쇼핑은 잊을 수 없다. "연주회용 옷과 구두를 1만달러어치 살 수 있게 해줬어요. 정장과 셔츠를 여러 벌 맞췄고, 오늘 신고 온 프라다 구두도 그때 샀죠(웃음)."
선우예권은 느리게 가는 연주자다. 일부러 어렵고 도전적인 곡을 찾아 땀을 쏟는다. "성격이 지랄맞아서"라고 했다. "연주나 대회를 앞두곤 엄마와도 연락을 끊어요. 가까운 친구들은 제가 지는 걸 싫어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구석이 있어서 변호사가 됐어도 어울렸을 거래요." 그는 "'그냥 그러려니'가 잘 안 된다"고도 했다. "물고 따지는 성격이라. 겉은 부드러운데 속은 맵고 강하고 단단해서 가슴으로 와닿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오는 12월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은 전석 매진됐다. 빗발치는 요청에 12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추가 공연을 준비 중이다. 대회 연주 실황을 담은 '2017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앨범'은 지난 23일 디지털 음원으로 전 세계에 동시 발매됐고, 오는 8월 데카 골드 레이블로 나온다. 선우예권의 개성과 장기, 젊음과 열정까지 새긴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