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16 09:56

■ 연극 '대학살의 신' 출연···24일부터 공연
"도화지 같다고요? 평범하게 꾸준히 해온 덕분이죠."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24년 차 연극배우 이지하(47)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온 비결에 대해 "나이보다 철딱서니가 없어서"라고 겸손해하며 웃었다. "타고난 배우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분들과 달리 평범한 배우라 항상 노력파로 살아왔어요."
그래서일까. 이지하는 하얀 도화지처럼 무슨 역에든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체홉 '벚꽃동산'의 지주 라네프스카야 부인부터 '잘 자요, 엄마'에서 삶의 마지막을 미리 계획하고 엄마와 대화를 나누려는 딸 '제씨'까지 도맡는, 대학로에서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로 통한다.
6년 만에 돌아오는 라이선스 연극 '대학살의 신'에 남경주·최정원·송일국 등 스타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캐스팅됐을 때, 대중적인 지명도가 덜함에도 연극계 관계자들이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이지하는 경성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이끄는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이 감독의 눈에 띄어 이 극단의 대표작인 '바보각시'로 데뷔한, 초반부터 될 성 부른 유망주였다.
하지만 이내 연극이 힘들어 잠시 접었다. 제과회사 경리로, 이벤트회사에서 막일을 하며 약 5년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연극을 벗어날수 없었다. 1998년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한 '종로고양이'(연출 김광보)로 복귀한 후 20년을 한 결 같이 달려왔다. 2008년 '오레스테스 시련'으로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받는 등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도 따라붙었다.
"다양한 작업을 해보다 보니 예민함이 덜해졌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겪다 보니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연극의 본질이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고요."
지식인의 허상을 유쾌하고 통렬하게 꼬집는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학살의 신'은 여느 작품보다 '혼자서만 잘해서'는 안 되는, 배우들과 합이 중요하다.
11세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소년의 이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 때린 소년의 부모인 알렝과 아네뜨가 맞은 소년의 부모인 미셸과 베로니끄의 집을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산층 가정의 부부답게 고상하고 예의 바르게 시작됐던 이들의 만남은 대화를 거듭할수록 유치찬란한 설전으로 변질된다. 종국에는 눈물 섞인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가면 안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민낯을 까발리는 이 연극에서 이지하는 세계의 안녕과 평화를 꿈꾸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타인을 억누르고 조율하려 들어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 베로니끄를 연기한다.
정극 배우 이미지가 강한 이지하지만, 코미디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뽐냈다. 가장 핫한 연출가 겸 극작가 고선웅이 초창기에 웃자며 작심하고 만든 연극 '락희맨쇼'에서 엉뚱한 여성인 나미, 미스프랑스를 선발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극 '미스 프랑스'에서 1인3역 등이 예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베로니끄와 비슷한 점이 생겨요. 융통성 없이 세세한 것에 집착하게 되는 거죠. '대학살의 신'은 거친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섬세해요.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은 것의 비율을 51대 49로 조정해야 해서 어렵죠. 그 균형감각을 통해 다른 코미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대학로의 40대 여성을 대표하는 배우로 책임과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제가 어마어마한 작품에 출연한 건 아니에요. 꾸준히 성실하게 쌓아온 것을 높게 평가해주시는 거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 항상 어느 정도 성과를 낸다는 신리가 쌓이더라고요. 저로 인해 극장 객석이 가득 차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점점 어깨가 무거워져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하던 잣대는 다소 여유가 생겼다. "저를 조금 더 용서를 해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조금 더 해주자는 생각"이라고 웃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남은 배우의 시간이 더 힘들어질 거 같더라고요. '대학살의 신'을 통해서 연극배우로 살아남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과 어떤 노력을 더 담보해야 하는 지를 깨닫고 싶어요." 24일부터 7월2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도화지 같다고요? 평범하게 꾸준히 해온 덕분이죠."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24년 차 연극배우 이지하(47)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온 비결에 대해 "나이보다 철딱서니가 없어서"라고 겸손해하며 웃었다. "타고난 배우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분들과 달리 평범한 배우라 항상 노력파로 살아왔어요."
그래서일까. 이지하는 하얀 도화지처럼 무슨 역에든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체홉 '벚꽃동산'의 지주 라네프스카야 부인부터 '잘 자요, 엄마'에서 삶의 마지막을 미리 계획하고 엄마와 대화를 나누려는 딸 '제씨'까지 도맡는, 대학로에서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로 통한다.
6년 만에 돌아오는 라이선스 연극 '대학살의 신'에 남경주·최정원·송일국 등 스타배우들과 함께 나란히 캐스팅됐을 때, 대중적인 지명도가 덜함에도 연극계 관계자들이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이지하는 경성대 연극영화과 졸업 후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이끄는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이 감독의 눈에 띄어 이 극단의 대표작인 '바보각시'로 데뷔한, 초반부터 될 성 부른 유망주였다.
하지만 이내 연극이 힘들어 잠시 접었다. 제과회사 경리로, 이벤트회사에서 막일을 하며 약 5년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연극을 벗어날수 없었다. 1998년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한 '종로고양이'(연출 김광보)로 복귀한 후 20년을 한 결 같이 달려왔다. 2008년 '오레스테스 시련'으로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받는 등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수식도 따라붙었다.
"다양한 작업을 해보다 보니 예민함이 덜해졌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겪다 보니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연극의 본질이 '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고요."
지식인의 허상을 유쾌하고 통렬하게 꼬집는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대학살의 신'은 여느 작품보다 '혼자서만 잘해서'는 안 되는, 배우들과 합이 중요하다.
11세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다 한 소년의 이 두 개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 때린 소년의 부모인 알렝과 아네뜨가 맞은 소년의 부모인 미셸과 베로니끄의 집을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산층 가정의 부부답게 고상하고 예의 바르게 시작됐던 이들의 만남은 대화를 거듭할수록 유치찬란한 설전으로 변질된다. 종국에는 눈물 섞인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가면 안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민낯을 까발리는 이 연극에서 이지하는 세계의 안녕과 평화를 꿈꾸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타인을 억누르고 조율하려 들어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자 베로니끄를 연기한다.
정극 배우 이미지가 강한 이지하지만, 코미디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뽐냈다. 가장 핫한 연출가 겸 극작가 고선웅이 초창기에 웃자며 작심하고 만든 연극 '락희맨쇼'에서 엉뚱한 여성인 나미, 미스프랑스를 선발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코미디극 '미스 프랑스'에서 1인3역 등이 예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베로니끄와 비슷한 점이 생겨요. 융통성 없이 세세한 것에 집착하게 되는 거죠. '대학살의 신'은 거친 작품처럼 보이지만 사실 섬세해요. 드러냄과 드러내지 않은 것의 비율을 51대 49로 조정해야 해서 어렵죠. 그 균형감각을 통해 다른 코미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대학로의 40대 여성을 대표하는 배우로 책임과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제가 어마어마한 작품에 출연한 건 아니에요. 꾸준히 성실하게 쌓아온 것을 높게 평가해주시는 거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 항상 어느 정도 성과를 낸다는 신리가 쌓이더라고요. 저로 인해 극장 객석이 가득 차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점점 어깨가 무거워져요."
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하던 잣대는 다소 여유가 생겼다. "저를 조금 더 용서를 해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조금 더 해주자는 생각"이라고 웃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남은 배우의 시간이 더 힘들어질 거 같더라고요. '대학살의 신'을 통해서 연극배우로 살아남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과 어떤 노력을 더 담보해야 하는 지를 깨닫고 싶어요." 24일부터 7월23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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