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06 01:17
[임희영 로테르담 필 첼리스트에게 듣는 '수석의 삶']
압박감 스트레스에 8㎏ 쪄도 학교보다 더 배우는 곳이 악단
매주 명지휘자와 함께하며 큰 그림 그리는 법 배우니 좋아
"처음 한 달은 지옥 훈련 같았어요. 들어가자마자 2주간 유럽 연주 여행을 떠났는데, 날마다 연주를 해서 짐을 풀고 쌀 겨를도 없는 거예요. 게다가 저는 첼로의 리더. 평단원은 실수해도 되지만 수석은 '돌(rock)' 같아야 한대요. 뒤에 앉은 열 명이 맘껏 기댈 수 있는 '스트롱맨'."
점심 샌드위치를 삼키다 말고, 임희영(30)이 한숨을 폭 쉬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첼로 수석인 그녀를 지난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작년 8월부터 그가 첼로 수석을 맡고 있는 이 악단은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했다.

로테르담 필은 데이비드 진먼과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 명(名)지휘자들의 조련을 받은 유럽 명문. 악단 설립 98년 만에 첫 한국인 첼로 수석이 된 그녀에게 '수석의 삶'을 물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와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친 임희영은 첼로 단원 11명 중 제일 어리다. 또 한 명의 첼로 수석과 경쟁해야 하는 것은 물론 예순 살 동료 단원도 이끌어야 한다. "눈으로는 지휘자와 다른 파트 수석들을 좇고, 귀로는 첼로 단원들이 내는 소리를 정확히 짚어내야 해요. 압박감이 엄청났어요." 폭식으로 위안을 삼았다. 여덟 달 만에 몸무게가 8㎏ 쪘다.
아직 수습 기간(2년)이지만 들어가길 잘했다 생각 드는 건 실력 있는 지휘자들과 매주 함께하면서 "큰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악단 수석지휘자 네제 세갱은 열두 도시에서 연주하면 같은 곡도 열두 번이 다 달라요. 공연장마다 음향 상태를 분석해 활 쓰는 법을 지시하죠. 잘 울리는 홀에선 스타카토를 쌔끈쌔끈하게 끊어줘야 소리가 뭉치지 않는대요. 명예지휘자인 게르기예프는 리허설이 더 기다려지는 지휘자예요. 브루크너 교향곡 9번에서 첼로 파트가 8분음표 네 개를 긋는데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여긴 인생을 다 산 사람이 내는 소리다. 나 같으면 100㎏ 거구가 첼로를 켜듯 활을 긋겠다'고 했죠." 임희영은 "젊은 동양인 수석을 향한 현지 단원들의 시기는 항상 있기 때문에 초연해져야 한다"고 했다. 재밌는 건 질투가 수석에게만 향하는 건 아니란다. "이름난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이 협연하러 와도 잘한다고 칭찬 안 해요. 단원들은 지휘봉을 드는 순간 알아요. 지휘자가 능력이 없으면, 무시하고 안 따르죠." 임희영은 "학교보다 더 많이 배우는 곳이 오케스트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