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5.26 01:33
['음악 토크 콘서트' 열고 인문학 가르치는 염홍철 前 대전시장]
지난해 한밭大 석좌교수로 부임… 수업 전, 예술가 초청해 콘서트
"기계 만질수록 감성 더욱 필요… 강의 대신 음악만 들으러 와도 돼"
23일 교양 수업이 열린 대전 한밭대 강의실 연단에 교탁 대신 그랜드 피아노가 놓였다. 반팔 티셔츠 위에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를 신은 염홍철(73) 석좌교수가 단상에 올랐다. "여러분, 강의 전에 음악 들으셔야죠. 오늘은 성악가를 모셔왔어요."
바리톤 길경호씨와 동료 성악가 3명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20분의 짧은 공연을 선보였다. 가곡 '향수'와 이탈리아 민요 '오 솔레미오' 등이 강연장에 울려 퍼지자 학생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300명 넘게 찬 강연장이 순식간에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음악이 있는 토크 콘서트'란 이름으로 매주 화요일 한밭대 강당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좌다. 대전시장을 지낸 염 교수가 지난해 2학기 학교로 부임하면서부터 진행하고 있다. 그는 강의마다 초반 20분을 할애해 '미니 음악회'를 연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클래식·국악 뮤지션들을 초청한다고 했다.
"한밭대생의 70%가 공대생이에요. 만날 컴퓨터랑 기계만 만지는 학생들이 오히려 더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적 감성을 키워야 더 좋은 공학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수강생은 200여명인데 매번 300명 넘는 학생이 자리를 채운다. '강의 안 들어도 좋으니 누구든 와서 음악은 즐겨라'란 공지 때문이다. 뮤지션 섭외도 그가 직접 한다. "과학 도시 대전 아닙니까? 대전에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같은 인재가 나오려면 예술을 통해 영감을 얻는 과학자가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대전시장 재임 시절 그는 예술(Art)과 과학(Science)이 융합된 도시를 만들겠다며 '아티언스(Artience)'란 말을 만들었다. 시립미술관, 이응로미술관, 시립국악원, 예술의전당 등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충남 논산이 고향인 염 교수는 한밭대 전신인 대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경남대 정치학 교수 등으로 강단에 섰다. 그가 쓴 '제3세계와 종속이론'은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의 대표 필독서였다. 정치인으로 변신해 민선 3기, 5기 대전시장을 지냈고 지난 2014년 임기를 마친 뒤 교단에 복귀했다. "시장을 오래 했으니 행정학이나 원래 전공인 정치학을 가르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인문 교양 강의를 하겠다고 했어요. 지식은 젊고 유능한 교수들이 더 잘 가르칠 수 있어요. 세상을 오래 산 제가 인생 경험은 많으니 살아가는 지혜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요즘 그는 원고지 3장짜리 '아침 단상'을 지역 일간지에 연재하고 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원고를 쓴다고 했다. 2008년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지인들에게 생각을 정리한 편지를 보내며 굳어진 습관이다. 사랑과 성, 건강과 죽음, 용서, 성공 등 다양한 주제를 편지에 담는다. 수업도 마찬가지. 이날은 오바마와 링컨 전 대통령의 사례를 통해 리더십을 강의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없다. 수강생에게 내는 과제는 딱 하나. '나의 인생 설계'란 리포트만 제출하면 된다.
그는 "우리 세대와 달리 학생들이 꿈꾸는 삶이 아주 구체적이고 다양해서 놀랍다"고 했다. "수제 컵케이크 전문 카페를 하겠다는 학생도 있고, 캘리그래퍼를 하고 싶다는 학생도 있어요. 전 '열심히 한번 해보라'고 해요.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란 뜻의 신조어)라는 무지막지한 시대에도 여전히 학생들은 꿈꾸고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더군요. 이런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가 섣불리 위로를 건네기 전에 학생들 말을 경청해주는 게 의미 있는 일인 거죠. 컵케이크 만드는 데 공대 지식도 다 반영이 됩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