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의 손짓에… '감정의 물결' 일렁였다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7.05.26 01:43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정명훈 후임' 미코 프랑크 지휘… 프랑스 음악 자부심 돋보인 연주
"인간의 모든 감정이 곧 내 음악"

초록 풀 내음이 진동한 25일. 4년 만에 내한해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오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산뜻한 정물화 같은 프랑스식 성찬(盛饌)을 차려냈다. 2015년부터 정명훈 지휘자 후임으로 악단을 이끄는 미코 프랑크(38)는 정결하면서도 열정 넘치는 지휘로 무대를 아울렀다.

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2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지휘자 미코 프랑크는 한국에서의 첫 지휘를 2007년 서울시향과 이곳에서 했다. /이진한 기자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작품으로 채운 2부가 이날의 핵심이었다. 서른여덟 라벨이 러시아발레단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단장에게서 위촉받아 쓴 '다프니스와 클로에' 제2모음곡은 엄격한 조성 안에 자신의 몽상을 투영한 발레곡. 투명하게 오르내리는 플루트와 사뿐히 미끄러지는 하프로 고요한 새벽을 빚어낸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어미 거위' 모음곡에선 악단 특유의 섬세한 표현력이 빛을 발했다. 자장가처럼 조용한 제1곡 '잠자는 숲속의 미녀 파반'부터 3박자 화려한 멜로디를 새기며 끝나는 제5곡 '요정의 정원'까지 다섯 개 동화를 모은 이 곡에선 특히 제4곡 '미녀와 야수의 대화'가 두드러졌다. 느린 왈츠 사이로 미녀의 우아한 고음과 야수의 으르렁거림이 생동했다.

1부에서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만나 불규칙한 매력을 발산했다. 손열음은 서울시향 악장을 지내 우리에게도 친숙한 스베틀린 루세브와 거슈윈의 프렐류드를 앙코르로 선사해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악단이 앙코르로 들려준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도 깔끔한 선물이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프랑스 본토의 감각과 전통으로 무장한 연주였다. 프랑크는 정확한 필치와 담백한 해석으로 프랑스 음악의 아름다움과 자부심을 뽑아냈다"고 했다.

지휘 강국 핀란드에서 태어나 최근까지 베를린필, 런던 심포니, 뉴욕필 등 정상급 교향악단을 지휘한 프랑크는 무릎 수술 후유증으로 평소 의자에 앉아 지휘한다. 하지만 이날은 거의 대부분 자리에서 일어나 악단을 이끌었다. 감정이 고조되면 일어나 지휘대 아래로 내려갔고, 단원들의 눈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지휘했다. 음악에 취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객석을 향해 팔을 휘저을 때면 청중도 함께 음악을 만들어내는 듯한 환상에 빠졌다. 단원들은 프랑크가 만들어준 박력과 부드러움 안에서 전력질주했다.

프랑크의 취미는 '걷기'다. 공연 전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고 울고 때론 무심한 표정을 눈여겨본다. 속내까진 알 수 없지만 보고 궁금해하면서 얻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내 음악이 되기 때문"이라 했다. 25일 공연에서 그가 풀어낸 건 바로 그 '감정'의 물결이었다. 라벨이 20세기 초 파리를 걸으며 수집한 수많은 감정의 조각은 순간을 살고 사라져 버렸지만 라벨은 음악에 그 감정들을 새겨넣었다. 100년 후 프랑크가 자신의 경험을 보태 그 감정의 역사를 되살렸다. "클래식 공연의 묘미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라던 프랑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