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5.17 01:04
[뮤지컬 '찌질의 역사' 원작자 김풍 웹툰 작가]
20대 남자들의 '찌질'한 연애담
매 화마다 독자 분노 빠뜨려… 원작, '발암 웹툰'으로 불리기도
"부끄러웠던 젊은 날의 고백… 관객도 그런 순간 떠올렸으면"
만화가 김풍(본명 김정환·39)이 알 없는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다음 달 3일 그의 웹툰 '찌질의 역사'가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스무 살 '철없는 수컷들'의 연애담을 그린 이 작품의 별칭은 '암을 유발한다'는 뜻의 '발암(發癌) 웹툰'. 주인공 민기가 개명(改名)하려는 여자 친구에게 전 여자 친구 이름을 추천하거나 첫 잠자리 순간 '내가 처음이지?'라고 묻는 식이다. "찔리는 분들 많을 거예요. 하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되려면 들여다봐야 해요. 부끄러울 만큼 '찌질'했던 순간을."
1999년 삼수 끝에 홍익대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 만화가를 꿈꾼 적은 없었다. "대입이 다가오니 공부로는 답이 없고,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고 했다. 어렵게 대학 문턱을 넘었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치명적인 문제점을 발견했다. "(종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다른 줄 몰랐어요. 잘못 입학한 거죠." 그는 일단 대학 생활을 즐겨보기로 했다.

2002년 포털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 재미 삼아 올린 만화 '폐인의 세계'로 일약 '1세대 웹툰 작가' 반열에 오른다. 이듬해 웹툰 서비스를 시작한 포털 사이트 다음이 이 작품과 정식 연재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폐인의 세계'를 '폐인 가족'으로 이름만 살짝 고쳤다. "고군분투 없이 하루아침에 만화가가 돼버린 거죠. 당연히 '소명 의식'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열정 없이 만화를 그리다 보니 서른쯤 '위기'가 찾아왔다. "강풀·곽백수 등 다른 '1세대 웹툰 작가'는 입지를 다져가는데 저는 이뤄 놓은 게 없었어요. '김풍은 만화가로서 끝났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반박할 수 없어 화가 났지요. 세상을 놀라게 할 작품을 보여주자고 다짐했어요."
하지만 기본기가 없어 밑천이 금방 드러났다. 콘티를 그려내는 족족 "재미없다"며 거절당했다. 두 달 동안 '창작의 고통'과 싸우던 그는 머리가 지끈거려 1년간 '자체 안식년'을 갖기로 한다. "그렇게 5년간의 '흑역사'가 시작됐죠. 만화는 안 그리고 트위터 팔로어 수 늘리는 데만 열중했어요."
모아둔 돈이 고갈될 즈음 영화 '건축학개론'을 봤다. 사랑에 서툰 스무 살 남학생의 연애담이었다. "수지 앞에서 '찌질'하기만 했던 이제훈이 어떻게 근사한 엄태웅으로 변했는지 궁금했어요. 그 틈을 만화로 그려보기로 했죠." '찌질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독자가 화날 법한 이야기만 긁어모았다. 김풍은 "20대 시절 내 연애를 복기해보면서 상대방에게 일부러 상처주려고 던졌던 말이나 무책임한 행동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며 "독자에게 허장성세 가득했던 젊은 날을 돌아보게 하는 만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뮤지컬 '찌질의 역사'에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 "관객들에게 '부끄러운 순간'을 상기시켜주면 좋겠어요. 과거의 나를 실컷 때려주고 싶은 그런 작품이요. 그날 밤 잠 못 들게 만들면 더할 나위 없고요." 듬성듬성 자란 콧수염을 매만지며 그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