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문화 만난다

  • 양지호 기자

입력 : 2017.05.09 01:03

'아라비아의 길' 展 오늘 개최… 13개 박물관 소장품 460여점

곱슬머리가 그리스·로마 양식과 비슷한 청동 조각 ‘남자의 얼굴’(왼쪽). 돌칼을 어깨에 둘러멘 모습의 ‘사람 모양 석상’은 기원전 4000년경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곱슬머리가 그리스·로마 양식과 비슷한 청동 조각 ‘남자의 얼굴’(왼쪽). 돌칼을 어깨에 둘러멘 모습의 ‘사람 모양 석상’은 기원전 4000년경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와 유럽 양쪽,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창고 같다." 동방정교회 총대주교 포티우스(820~893)는 자기 저서 '비블리오테카'에 이렇게 썼다. 아라비아반도는 기원전부터 동서 문명의 교차로였다.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와 차례로 교류했고 향신료 무역으로 부를 얻었다. 사막·석유·이슬람교가 아라비아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아라비아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을 9일부터 연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을 비롯한 13개 박물관 소장품 460여 점을 소개한다.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창시하고 오스만제국이 아라비아를 차지한 뒤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볼 법한 전개는 없다. 구석기시대부터 20세기 사우디아라비아 건국까지 다루면서도 이슬람 관련 유물은 최소화했고 그간 보기 어려웠던 석상과 석판 등을 전면 배치했다.

아라비아에서 말을 이미 가축화했음을 뒷받침하는 기원전 7000년경의 말 조각상부터 눈길이 간다. 2010년 사우디아라비아 마가르 지역에서 발굴했는데 말 머리 부분에 굴레로 추정되는 물건을 조각해 넣었다. 인간이 말을 최초로 길들인 것이 기원전 3500년 중앙아시아라는 기존 설을 뒤엎는 발견이었다. 남부 까르얏 알파우에서 발견된 청동 조각상(기원전 2~1세기 제작 추정)은 굵은 곱슬머리와 섬세한 이목구비 조형이 그리스 로마 양식을 떠올리게 한다. 지중해, 홍해,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아라비아반도가 문명을 연결하고, 문화를 퍼트리는 '길'이었다는 뜻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카바(검은색 정방형 신전)의 대문으로 1636년부터 사용된 높이 3.4m, 폭 1.8m의 나무문도 왔다. 근대가 태동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300년 동안 무슬림 순례자는 메카를 찾아 이 문이 달렸던 사원을 7바퀴씩 돌았을 것이다. 메카에 있는 카바는 무슬림이 아니면 갈 수 없고 그래서 다른 종교인들에게는 볼 수 없던 문이지만, 1947년 '현역 은퇴'하면서 지금은 전시에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우디관광국가문화유산위원회가 2010년부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 외국을 돌며 진행하고 있는 순회전이다. 아시아에서는 작년 중국 베이징 전시에 이어 두 번째다. 8월 27일까지. (02)2077-9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