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없는 배우들 능청스러움 폭발…'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 뉴시스

입력 : 2017.04.20 09:23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여고생 김고삼은 범인(凡人)이 아니다.

손목에서 고무줄이 나온다. 골다공증을 앓고 있지만 꿈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스트리트 파이터'다. 특이한 건 싸움에 지면 더 진화하고, 강력해진다는 점이다.

지난 16일 대학로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진행된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현장.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즉흥 뮤지컬'을 표방하는 이 작품은 이날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초반에 설정이 과대했다.

여고생 김고삼이 나온 뮤지컬 제목은 '럭키짱'이다. 공연을 준비하는 어느 극단의 연습실이라는 상황만 설정해놓은 이 뮤지컬은 내용과 제목이 매일 바뀐다. 100명의 관객이 아이디어를 내고, 가장 기발한 내용을 칠판에 적은 뒤 수용해나가며 극을 진행해나가는 형식이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이라는 극단 이름탓으로도 보였다.

이날 공연한 '럭키짱'은 초반의 복잡한 양상과 달리 '여고생 김고삼'의 성장담으로 모양새를 갖췄다.

대본도 없다. 배우들은 당일 주어진 상황을 대부분 애드리브로 소화해야해서 극의 내용이 허술할 수밖에 없지만 배우들의 즉흥적인 호흡과 긴장감이 오히려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승에서 최고의 스트리트파이터를 꿈꾸던 김고삼은 저승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학창 시절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악당으로 변한 '불화산'과 대결 끝에 승리한다.

김고삼과 불화산이 돌연 사랑하게 된다는 해피엔딩은 급작스럽지만, 약한 몸에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김고삼의 이야기가 뜻밖에 와 닿는다. 게다가 작품은 본의 아니게(?)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도 품게 된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하는 공동창작의 신기원을 쓰고 있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 가능한 건 배우들의 역량 덕분이다.

이날 김고삼과 불화산 역을 맡은 이영미와 박정표를 비롯해 정다희, 이정수, 김슬기 등 대학로에서 연기력·가창을 갖춘 배우들의 순발력과 능청스러움에 빚지고 있다. 대극장 뮤지컬 전문 배우인 이영미는 이날 다소 무리한 설정과 콘셉트에도 캐릭터의 고민을 순간 순간 빚어나갔다.

노래의 멜로디는 물론 정해져 있다. 대략 20개의 악보가 있고 그 중 11~12곡의 악보가 약 90분 짜리 러닝타임('럭키짱' 러닝타임은 약 100분)으로 진행되는 회차마다 사용된다.

하지만, 노래 가사는 그날 내용에 따라 매일 바뀐다. 기존 멜로디에 바뀐 가사를 붙이고 거기에 그에 따른 감정을 불어넣는 건 노련한 뮤지컬배우라도 힘든 일이지만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배우들은 거침 없다.

연출 역의 민준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배우와 객석을 조율하고, 특정 시점에 캐릭터의 과거를 만들어 그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등 중간마다 존재감을 드러낸다. 너무 과도하다 싶은 내용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가며 리듬을 조율한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현재 가장 핫한 연출로 자리매김한 김태형이 민준호와 나눠 가며 연출 역을 맡고, 연기에 특화된 홍우진이 박정표와 번갈아 가며 출연한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매일 무대는 '첫공'이자 '막공'이다. 주말 2회 공연하니 한달간 약 40회의 새로운 공연이 탄생하고 그날 막을 내리는 셈이다. 똑같은 하루가 없는 인생과 같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공연이 인생의 반영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오는 5월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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