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등장하는 '창극 유희왕'…흥보씨

  • 뉴시스

입력 : 2017.04.07 09:39

국립창극단 창극 '흥보씨'
외계인이 등장하는 창극은 처음이다.

착해서 손해만 보는 흥보의 안타까운 사정에 화성과 금성을 왕래 중이던 걸승 같은 외계인은 그에게 보리수 나무를 선물한다. 가뜩이나 가진 것 없는 흥보는 그 아래에서 '텅텅텅' 비우면 살 수 있다는 무소유의 깨우침을 얻는다.

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 신작 '흥보씨'(Mr. Heungbo)는 확장과 변주를 통해 창극의 본질을 톺아본다.

5일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개막한 이 창극은 유쾌한 에너지로 무장한 엔터테인먼트적 흥미와 강요하지 않게 와 닿는 메시지의 조합으로 동시대적 균형의 미학을 뽐냈다. 판소리 '흥보가'를 고쳐 쓴 작품인데 현대를 관통하며 동시대적인 해석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창극뿐 아니라 상반기 공연계 최대 기대작이었던 '흥보씨'는 명불허전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았다. 이 공연이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스타 창작진들이 뭉쳤기 때문이다. 특히 각 분야의 걸출한 '꾼'들이 만났다. 스타 연출가 겸 극작가인 이야기꾼 고선웅, 소리꾼 이자람이 주축이다. '각색의 귀재' 또는 '비틀기의 달인'으로 통하는 고 연출은 '흥보씨'의 '권선징악'은 살리면서 다양한 이야기의 결을 부여했다. 흥보는 주워온 자식이며 원래 놀부보다 형이었는데, 두 사람의 계약으로 뒤바뀌게 된 점은 형의 넓은 아량에 방점을 찍는다.

UFO 형상의 갓을 쓰고 ET처럼 흥보와 교감하는 다른 별에서 온 스님을 비롯해 "흥행행 흥행행"이라고 우는 '말하는 호랑이'는 고전의 모던한 치장이다.

자식을 낳는 대신 전쟁, 피난, 가난으로 풍찬노숙 중이던 거지들을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에서는 '대안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흥보의 아내 정씨는 소박을 맞은 인물이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흥부의 선함을 붓다와 예수의 정신에 자연스럽게 연결해냈다는 점이다. 흥보가 외계인으로부터 익히는 무소유는 붓다와 겹쳐진다. 흥보와 그가 받아들인 자식들은 예수와 열두제자를 연상케 한다. 이런 점은 너무 선량해 진부하거나 평면해보일 수 있는 흥보에게 입체성과 드라마를 부여한다.

2014년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극본·연출로 창극에 처음 도전해 차범석 희곡상 수상(2014)과 창극 첫 프랑스 진출(2016년 테아트르 드 라 빌) 등의 쾌거를 이뤄낸 고 연출은 두 번째 창극에서 한창 벼려진 솜씨를 자랑한다.

고 연출과 이번에 처음 호흡을 맞춘 이자람은 작창·작곡·음악감독을 맡아 이 톡톡 튀는 이야기에 안성맞춤 리듬감을 부여한다. 맞춰진 운율에 덩실거리는 리듬은 분명 우리 그것의 장단인데 모던하다. 특히 작품의 주제인 무소유를 상징하는 '텅텅텅 비워야하리' 등의 주제 선율은 뮤지컬의 '킬링 넘버' 이상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가난타령', '제비노정기', '박타령' 등 '흥보가' 눈대목의 원형이 유지되면서 자유자재로 변형되는 점은 창극의 미래처럼 들린다.

이자람은 이와 함께 UFO, 예수, 붓다 등의 이미지를 사운드로 표현하기 위해 인디 신의 가장 핫한 밴드 '실리카겔'의 김민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김민수의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이국적이면서 몽환적으로 울려 퍼지며 세련된 사운드를 보탠다.

가장 주목 받는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의 지경민 대표가 안무한 현대적인 움직임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그는 판소리, 창극 무대에서 마법 지팡이로 통하는 부채를 활용한 수준 높은 움직임을 선보인다. 특히 날아다니는 새가 아니라, 부유하지만 고독한 여성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제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창극단 단원들이 군무 장면에서 부채로 우산을 만드는 부분은 화려한 미장센이었다.

'흥보씨'에서 또 주목할 만한 점은 한층 무르익은 기량을 뽐내고 있는 국립창극단 20~30대 남자 배우들의 스타성과 기량이다. 흥보 역과 놀보 역에 캐스팅된 김준수와 최호성이 보여준 '브로맨스'는 대학로 2인 남자배우 뮤지컬 이상이었다.

춤꾼인 제비 역의 유태평양은 능청스러움과 화려한 춤으로 단단한 재미를 담당했고 안정된 소리 공력을 바탕으로 판소리 '흥보가'의 '흑공단타령'과 '제비노정기'를 각각 독창한 원님 역 이광복은 멋스러웠다. 노거지를 맡아 신명나는 춤과 장타령을 선보인 윤충일 국립창극단 명예단원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 이어 대활약했다.

'흥보씨'는 결국 총합하면 전통과 현대 공연예술의 장점을 한 판에 제대로 녹여낸 '유희왕'이다. 이 에너지는 객석에도 그대로 전달된다. 판소리 객석의 '얼~쑤!' 같은 추임새는 끊이지 않고 뮤지컬 객석처럼 끊임없이 환호와 박수가 나온다. 원전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권선징악의 교훈은 부러 녹여내지 않았는데도 악이 처벌받는 현재에 자연스레 비수를 꽂는다.

흥보와 작품은 텅텅텅하고 무소유를 강조하지만, 이 극의 완성도는 탕탕탕하고 공연계와 사회를 시원하게 저격한다. 제목 '흥보씨'의 '씨'는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해 부르는 말로 흥보와 그의 삶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 이 작품에 안정적인 프로덕션을 지원한 국립극장 안호상 극장장과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의 콤비 플레이도 기억해야 한다. 오는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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