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4.03 09:38
창작뮤지컬 '판'은 말 그대로 판을 제대로 깐 작품이다. 이 뮤지컬에서 무대로 통하는 판은 풍자가 한가득 벌어지는 자리요, 배우와 관객이 함께 노니는 공간이자, 이렇게 풀린 억누름을 털어내고 새롭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할의 원동력은 잘 만든 이야기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이 뮤지컬은 '호모 나랜스', 즉 이야기하는 인간의 속성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존재임을 확인한다.
19세기 말 조선시대가 배경. 양반가 자제인 '달수'가 염정소설과 정치풍자에도 능한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달수가 인간미에 입담을 겸비한 '호태'를 통해 이야기꾼의 매력에 빠지고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아나가는 과정이 뼈대다.
호태는 조선 후기의 직업 낭독가인 '전기수(傳奇叟)'다. 독서 열풍이 불던 당시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貰冊店)의 호황과 맞물리며 늘어났다. 스타 전기수인 호태의 이야기는 단지 여흥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을 반영하고, 풍자하며, 그래서 민중의 속앓이를 덜어준다.
그의 타깃의 중심에는 막무가내 사또가 있다. '비선실세'를 둔 사또는 '검은 명단'를 만들고, 흉포한 세상을 풍자한 패관문학이 떠돌자 이를 찾아 모두 불태워버리려고 한다. 현재의 블랙리스트, 검열과 겹쳐진다.
호태는 한발 더 나아간다. 우리나라 전래의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을 통한 풍자가 정점이다. 이 인형극에서 사또는 퇴임 뒤 살 절을 짓기 위해 장사꾼들로부터 후원금을 '강제'로 걷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판박이다. 객석에서는 호쾌한 웃음과 시원한 박수가 터진다.
철부지로 여자만 밝히던 달수는 호태와 함께 하며 입신양명 대신, 세상의 부조리를 유희로 풀어내는 이야기의 매력을 전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 '판'은 달수의 성장서사이기도 한데, 막바지 호쾌하고 리듬감 넘치는 노래 '새가 날아든다'에서 그가 중심이 돼 벌이는 판은 그가 더이상 철없는 도련님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자신의 이야기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전기수로 성장했음을 증명한다.
감옥에 갇힌 달수와 호태가 마지막으로 사또 앞에서 이야기 판을 벌이는 장면인데 그 와중에 민중들이 봉기, 관가로 쳐들어오는 장면을 상징화한 미장센도 일품이다.
솟대에 달린 흰새 인형, 부채 바람에 공중으로 가득 부유하는 새장 속 가득한 흰 조각들은 무대를 뒤덮는 형식적 미학뿐 아니라 민중들이 스스로 일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상징하는 내용적 미학도 함께 상징한다.
신예인 정은영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의 신선하면서도 완성도를 갖춘 이 작품의 연출자는 대학로에서 이미 터를 잡은 변정주다. 그는 촛불로 뒤덮였던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뮤지컬배우들'과 함께 민중봉기를 다룬 상징적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와 '내일로'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음악감독 김길려와 극을 이끌어가는 연희자인 '산받이' 역의 최영석이 빚은 음악편성은 감각적이다. 키보드, 바이올린, 드럼 등 서양악기와 장구 등 전통악기의 조합이 균형의 미학을 이룬다. 브릿팝 등을 연상시키는 서양 뮤지컬 작법의 노래들은 극 전개를 이끌고, 우리의 흥과 한이 밴 변화무쌍한 장단은 주인공들이 판을 벌일 때 주로 사용된다.
꼭두각시놀음 외에 솟대쟁이패 등 한국 전통 연희를 세련되게 잘 녹여냈다. 특히 한국 전통연희의 공동체적 성격을 계승한 마당극이 옹골차게 똬리를 틀었다. 무대와 객석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매개로 한 것과는 다른 교감의 결을 전한다.
정말 무대에서 노니는 배우들의 호연은 공연의 방점이다. 유제윤의 달수는 느긋하다가 극이 전개될수록 번뜩였고 김대곤의 호태는 능청 속에 품은 비수로 객석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이야기와 소설을 파는 매설방의 운영자인 춘섬 역의 섹시하고 호방한 최유하는 짧은 시간에 팔색조 매력을 뿜었다.
CJ문화재단(이사장 이재현)의 첫 제작지원 창작뮤지컬이다. 2015년 11월 크리에이티브마인즈에 선정된 후 전문가 멘토링 등 작품개발 과정을 거쳐 작년 6월 리딩공연으로 발표됐고 이후 수정을 거쳤다. 뮤지컬에서 창작지원 과정이 왜 중요한가를 입증하는 수작이다. 오는 4월15일까지 CJ아지트 대학로.
이런 역할의 원동력은 잘 만든 이야기다.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이 뮤지컬은 '호모 나랜스', 즉 이야기하는 인간의 속성을 기막히게 포착했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존재임을 확인한다.
19세기 말 조선시대가 배경. 양반가 자제인 '달수'가 염정소설과 정치풍자에도 능한 최고의 이야기꾼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달수가 인간미에 입담을 겸비한 '호태'를 통해 이야기꾼의 매력에 빠지고 '낭독의 기술'을 전수받아나가는 과정이 뼈대다.
호태는 조선 후기의 직업 낭독가인 '전기수(傳奇叟)'다. 독서 열풍이 불던 당시 책을 빌려주는 세책점(貰冊店)의 호황과 맞물리며 늘어났다. 스타 전기수인 호태의 이야기는 단지 여흥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을 반영하고, 풍자하며, 그래서 민중의 속앓이를 덜어준다.
그의 타깃의 중심에는 막무가내 사또가 있다. '비선실세'를 둔 사또는 '검은 명단'를 만들고, 흉포한 세상을 풍자한 패관문학이 떠돌자 이를 찾아 모두 불태워버리려고 한다. 현재의 블랙리스트, 검열과 겹쳐진다.
호태는 한발 더 나아간다. 우리나라 전래의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을 통한 풍자가 정점이다. 이 인형극에서 사또는 퇴임 뒤 살 절을 짓기 위해 장사꾼들로부터 후원금을 '강제'로 걷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판박이다. 객석에서는 호쾌한 웃음과 시원한 박수가 터진다.
철부지로 여자만 밝히던 달수는 호태와 함께 하며 입신양명 대신, 세상의 부조리를 유희로 풀어내는 이야기의 매력을 전하는 데 매력을 느낀다. '판'은 달수의 성장서사이기도 한데, 막바지 호쾌하고 리듬감 넘치는 노래 '새가 날아든다'에서 그가 중심이 돼 벌이는 판은 그가 더이상 철없는 도련님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자신의 이야기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전기수로 성장했음을 증명한다.
감옥에 갇힌 달수와 호태가 마지막으로 사또 앞에서 이야기 판을 벌이는 장면인데 그 와중에 민중들이 봉기, 관가로 쳐들어오는 장면을 상징화한 미장센도 일품이다.
솟대에 달린 흰새 인형, 부채 바람에 공중으로 가득 부유하는 새장 속 가득한 흰 조각들은 무대를 뒤덮는 형식적 미학뿐 아니라 민중들이 스스로 일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상징하는 내용적 미학도 함께 상징한다.
신예인 정은영 작가와 박윤솔 작곡가의 신선하면서도 완성도를 갖춘 이 작품의 연출자는 대학로에서 이미 터를 잡은 변정주다. 그는 촛불로 뒤덮였던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뮤지컬배우들'과 함께 민중봉기를 다룬 상징적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와 '내일로' 무대를 연출하기도 했다.
음악감독 김길려와 극을 이끌어가는 연희자인 '산받이' 역의 최영석이 빚은 음악편성은 감각적이다. 키보드, 바이올린, 드럼 등 서양악기와 장구 등 전통악기의 조합이 균형의 미학을 이룬다. 브릿팝 등을 연상시키는 서양 뮤지컬 작법의 노래들은 극 전개를 이끌고, 우리의 흥과 한이 밴 변화무쌍한 장단은 주인공들이 판을 벌일 때 주로 사용된다.
꼭두각시놀음 외에 솟대쟁이패 등 한국 전통 연희를 세련되게 잘 녹여냈다. 특히 한국 전통연희의 공동체적 성격을 계승한 마당극이 옹골차게 똬리를 틀었다. 무대와 객석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매개로 한 것과는 다른 교감의 결을 전한다.
정말 무대에서 노니는 배우들의 호연은 공연의 방점이다. 유제윤의 달수는 느긋하다가 극이 전개될수록 번뜩였고 김대곤의 호태는 능청 속에 품은 비수로 객석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이야기와 소설을 파는 매설방의 운영자인 춘섬 역의 섹시하고 호방한 최유하는 짧은 시간에 팔색조 매력을 뿜었다.
CJ문화재단(이사장 이재현)의 첫 제작지원 창작뮤지컬이다. 2015년 11월 크리에이티브마인즈에 선정된 후 전문가 멘토링 등 작품개발 과정을 거쳐 작년 6월 리딩공연으로 발표됐고 이후 수정을 거쳤다. 뮤지컬에서 창작지원 과정이 왜 중요한가를 입증하는 수작이다. 오는 4월15일까지 CJ아지트 대학로.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