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ble] "진짜 나를 찾게 해줘… 뮤지컬이 날 살렸죠"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7.02.21 14:31

[Table with] 스캔들 딛고 뮤지컬 디바로 제2전성기 맞는 아이비

"가수 땐 카메라가 날 따라와 줬는데, 이젠 내가 조명 따라 움직여야
처음엔 두통약 먹어가며 연습…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배워"

정상(頂上)에 오를 순 있어도 지키는 건 쉽지 않다. 내리막길의 빛바랜 ‘별’에게 대중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등 돌린 대중에게 다시 사랑받는 길은 결국은 실력. ‘그 어려운 걸’ 해낸 이가 있다. 2005년 데뷔해 최고 솔로 여가수가 됐지만 추문으로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한 아이비. ‘뮤지컬 디바’로 다시 정상에 오른 그녀가 ‘여자 박은혜’(본명)의 삶을 얘기한다.

"왜 내가 여기에 어쩌다 이렇게/눈 감은 채 살아왔던 거야 더는 그럴 수 없어/난 진실을 알게 됐어 그게 나를 비웃어도/이젠 돌이킬 수 없어" (뮤지컬 '아이다'의 암네리스 대사 중)

아이비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뮤지컬 업계에서 듣게 된 '의리'라는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지난해 뮤지컬 '위키드' 오디션에 합격하고서도 이전부터 출연해왔던 '시카고'의 지방 공연 일정이 새로 잡히자 '위키드' 출연을 포기 하려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만 해도 위키드 주연은 뮤지컬 배우라면 서로 하고 싶어 하는 역할이었다. 출연을 포기한다는 건 뮤지컬 배우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을 기회를 날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의리'란 단어는 아이비와 거리가 먼 말일 것만 같았다. 딱 10년 전인 2007년 전 남자 친구와의 스캔들로 정상에서 하루아침에 밑바닥으로 추락했던 그녀다. 신비로움으로 포장됐던 아이비였기에 팬들의 배신감도 상당했다. 화장으로 한껏 두껍게 칠해진 꺼풀이 벗겨졌을 때의 민낯은 그만큼 치명적이니까.

하지만 그녀를 겪어봤다는 사람들 반응은 달랐다. 아이비가 아닌 박은혜(본명) 시절부터 그녀를 보아왔다는 사람들은 '영악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아이' '마음 여린 착한 친구' '털털함의 극치'라는 수사(修辭)를 곁들였다.

이미지 크게보기
편안한 니트 티셔츠 차림의 아이비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분홍빛 꽃잎이 수줍게 물든 듯 발그레한 혈색의 아이비는 ‘뮤지컬’이란 옷을 입고 제대로 행복해 하고 있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단체 생활에 출퇴근… 뮤지컬이 날 살려"

―왜 '위키드'를 포기하겠다고 했나요?

"'시카고' 하면서 식구라고 해도 될 정도로 피와 땀을 나눴다고 할 만큼 똘똘 뭉쳐 있었거든요. 제가 원캐스트(한 역할에 단독 출연)였고, 제가 빠지면 공연이 무산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욕심 났지만, 저 좋자고 다른 분들이 돈 벌 기회까지 뺏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앙상블(단체 역할) 하시는 분 중 일부는 월세도 못 내서 힘들어한다고 들었는데 제가 어떻게 그래요."

―결국은 둘 다 출연하게 된 거죠?

"양쪽 제작사에서 서로 일정을 조정해 줬어요. 행운인 거죠. 그때 알았어요. 사람이 마음을 선하게 쓰면 결과가 좋게 오는구나. 착하게 살아야겠다(웃음)."

―힘든 일도 많았는데.

"가요계가 많이 바뀌었어요. 아이돌 시대가 오면서 솔로 가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죠. 음반 활동 하는데 스트레스가 많아졌고, 혼자 하다 보니 모든 짐을 제가 다 짊어져야 했어요. 뮤지컬은 달랐어요. 잘 어우러져야 작품 퀄리티가 좋아지니 함께 만들어 가야 했어요. 단체 생활 하고 출퇴근하는 패턴이 제 라이프 스타일과 잘 맞았달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좋아요. 뮤지컬이 절 살린 거죠. 옥주현·바다 선배님이 이래서 뮤지컬을 하는구나 싶었죠."

끈끈하다는 얘기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텃세가 셀 수 있단 얘기다. 적응하지 못해 왕따당한다는 아이돌 얘기도 들린다. 가수로 활로를 찾지 못해 뮤지컬로 돌아선다는 평도 듣기 십상이다.

"제 앞에서 티 안 내지만 그런 텃세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선입견도 존재할 수 있어서 무조건 고개를 숙였죠. 제가 신시컴퍼니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신시 공무원'이란 별명까지 생겼어요.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뮤지컬 ‘아이다’에서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로 열연하는 아이비.
뮤지컬 ‘아이다’에서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로 열연하는 아이비. / 신시컴퍼니
연습 벌레, 뮤지컬 디바 되다

2005년 앙고라 니트를 입고 등장한 아이비는 충격 그 자체였다. 벗지 않은 섹시함이라니. 요염한 고양이 같은 눈매에 마이크를 파고드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마법의 링에 홀린 듯했다. 묵직한 '한 방'은 없었지만 날 선 칼날에 마음이 베인 듯 쓰라렸다. 하지만 뮤지컬은 달랐다. 여린 발성으로 성악가 출신 배우들 사이에서 빛을 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대 적응은 어땠나요.

"댄스 가수였기 때문에 사실 뮤지컬을 우습게 봤던 거 같아요. 뭐 별건가 하고 자신했었는데 산산이 무너졌었죠. 어려움 많았어요. 가수 할 때는 왼쪽 오른쪽 내 마음대로 움직여도 카메라가 따라와 주고 댄서들이 움직여 주는데 여기서는 번호대로 제가 조명을 따라가야 하는 거예요. 갑갑했죠. 왜 이 번호에만 서야 하느냐 반발도 했죠. 적응하는 데 2~3년은 걸린 거 같아요."

―과장된 목소리로 연기하기도 하는데요.

"연기하는 게 부끄러워 죽겠더라고요. 아직도 그래요. 특히 '아이다'를 하면서 외국 연출가로부터 더 소리를 앞으로 내보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마이크 있는데 굳이 왜 그럴까 답답했죠. 아이다와 암네리스가 서로 10m 떨어져 있는데 자연스레 대화해보라고 계속 요구하는 거예요. 전달을 엄청 중요시하더라고요. 결과적으론 그게 굉장히 도움 됐어요."

뮤지컬 '아이다'에서 이집트 공주인 암네리스 역을 맡고 아이비를 다시 봤다는 팬들이 줄을 잇는다. 활발한 척하면서 내면의 유약함을 숨기려 애쓰지만, 결국은 고난을 극복하고 홀로 서는 공주의 모습이 아이비와 상당 부분 겹쳐 보인다.

10년 전 스캔들은 회복 불능 상태가 될 만큼 치명적이었다. 당뇨 합병증을 앓던 어머니는 실명 위기까지 겪었고, 소속사와 소송을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이비에게 성실함이 없었다면 지금같이 뮤지컬계 '톱(top)' 자리에 오르긴 어려웠을 것이다.

"암네리스가 내는 고음 음역을 거의 불러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너무 없는 거예요. 몇 달 동안 매일 두통약 달고 살고 잠도 못 잤죠.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더라고요. 지난해 7월에 새집으로 이사 갔는데 층간 소음 보강이 잘됐다고 들어서 엄청 연습했거든요. 얼마쯤 됐을까, 옆집 이웃이 편지를 써놓으셨더라고요. '새벽 두세 시에도 들리는 노랫소리에 살기가 힘들어요. 좋은 모습으로 공연장 찾아뵙겠습니다.' 매너 좋으신 분이었던 거죠. 참다참다 쓰셨나 봐요. 샤워할 때도 춤추며 노래 연습 했으니까요. 나중에 직접 찾아뵙고 사과하긴 했어요(웃음)."

아이비는 ‘곰언니’라는 아이디로 패션·뷰티 블로그를 운영하며 세련되고 친근한 ‘옆집 언니’로 자리매김했다. 그녀가 아끼는 메종마레 코트.
아이비는 ‘곰언니’라는 아이디로 패션·뷰티 블로그를 운영하며 세련되고 친근한 ‘옆집 언니’로 자리매김했다. 그녀가 아끼는 메종마레 코트.
흘러가는 대로 살고파

"당신의 진짜 모습 몰라줄 때 마음 아픈 거 알죠/ 언젠가 찾게 될 거란 걸 / 또 다른 나"

오래된 건물 담장을 뒤덮는 아이비 덩굴은 끈질긴 생명력이 특징이다. 벽에 붙어 자라면서 건물을 파괴한다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조경학자들은 오히려 덩굴 식물이 건물을 보호한다고 설명한다. 아이비란 이름을 붙인 박은혜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이비 하면 왠지 영화 '야성녀 아이비'가 생각나요. 독하고 섹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을 텐데요.

"만들어진 모습, 꾸며진 모습. 이제는 힘들어서 못 하겠어요. 어릴 때는 원래 가진 모습과는 다른 나로 살아야 했죠. 방송이든 뮤지컬이든 뭐든 그냥 제 모습대로 하고 싶어요."

―오히려 일부러 청순하게 하려거나 코믹한 모습을 보이는 거 아닌가요.

"예전엔 섹시한 이미지에 맞춰 살았던 건데 지금은 뮤지컬만 하다 보니까 억지로 청순해야지, 웃겨야지 이런 것도 없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고 있어요."

―여자로서 힘든 일도 겪었어요. 이젠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제가 성격도 급하고, 계획 같은 것도 없이 충동적으로 살았어요. 재밌으면 좋은 거다, 이런 식으로요. 지금은 조금 지쳐 있는 상태예요. 올해는 조금 쉬어가려고요. 해방촌에 데님 전문 매장을 열고 예전부터 원했던 패션 사업도 해보려 해요. 이젠 '여자 박은혜'의 삶도 누려야죠.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