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겨울음악제, 우리의 밤도 당신의 낮만큼 아름답다

  • 뉴시스

입력 : 2017.02.20 09:55

손열음·매기 피네건
하얀 설원의 2월 평창은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르다. 낮에는 우아한 클래식 선율이 품격을 드러내고, 밤에는 재즈의 멜로디가 관능을 뽐낸다.

17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오후 5시와 오후 9시 각각 한 차례씩 펼쳐진 콘서트가 그 변신의 무대였다.

두 콘서트에서 울려 퍼진 멜로디와 리듬은 그러나 아름다운 건 마찬가지였다. 1990년대 동화적인 멜로디로 인기를 누린 그룹 '코나'의 대표곡인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의 제목을 응용하자면, '우리의 밤도 당신의 낮만큼 아름답다'가 주제였다.

앞선 순서는 클래식음악 실내악 무대.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젊은 아티스트들의 열정적이면서도 지적인 연주들이 이어졌다.

김상윤(클라리넷), 이상 엔더스(첼로), 김규연(피아노)의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위한 3중주 B플랫 장조 Op. 11'은 쾌활했지만 가볍지 않았다. 20여분간 평창 내 대관령 고개처럼 드라마틱한 변주가 이어졌다. 손열음(피아노)과 김규연(피아노)의 네 손은 짧은 시간에 강렬함을 선사했다. 슈베르트의 '알레그로 A단조 D. 947 - 인생의 폭풍'은 두 피아니스트의 감정 고조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면서도, 두 화음의 격렬한 포옹으로 짙은 여운을 드러낸다.

손열음(피아노)과 매기 피네건(소프라노)은 클래식에 깃든 재즈의 고운 감각을 드러냈다. 손열음의 감미로운 선율에 맞춰 피네건이 모던하지만 고전미가 배인 목소리로 '안개 낀 날', '우리의 사랑은 여기에 머무네', '나를 보살펴 줄 누군가' 등 거슈윈의 곡들을 들려줬다.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 중 한명으로 통하는 거슈윈은 유럽중심의 클래식 음악에 재즈를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한 인물로 통한다. 강렬한 타건으로 유명한 손열음은 이 무대에서 건반의 미세한 숨결을 찾아냈고, 청아하지만 팝적인 요소가 적당히 스며든 피네건의 목소리가 그 위를 유려하게 흘러갔다.

이 무대의 하이라이트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 월튼의 '피아노 4중주 D단조'. 16세 월튼의 재기가 넘치는 이 곡은 결연한 멜로디와 리듬, 불쑥 튀어나오는 불협화음 등 곳곳에 역동적으로 즐길 만한 요소가 많다.

각 파트의 젊음을 대표하는 연주자들인 이한나(비올라), 임지영(바이올린), 이상 엔더스(첼로), 김규연(피아노)은 거침 없이 자신의 선율을 따라가되 차진 화음으로 일반 클래식 팬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이 곡을 귓가에 충분히 감돌게 만들었다. 객석에 자리한 정명화 평창겨울음악제 공동예술감독은 기립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어진 오후 9시 무대는 실내악 무대의 품위를 재즈스럽게 이어 받았다. 이번 음악제의 재즈 파트를 이끌고 있는 피아니스트 존 비즐리가 주축인 7인조(셉텟)가 나섰다.

관록 있는 뮤지션들의 여유와 노련미가 넘쳤다. 1부는 로맨틱한 선율, 2부는 펑키한 재즈에 주로 방점을 찍었다.

1부에서 눈에 띈 선곡은 모던 재즈의 중심으로 자유분방한 연주를 내세우는 '비밥(Bebop)'의 창시자 버드 파웰을 오마주한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의 '버드 파웰'이었다. 비즐리의 피아노와 대릴 존스의 베이스가 노래 골격의 두 축은 단단히 세웠고 그 위에 트럼펫, 색소폰 등 관악기들이 자유분방한 음표를 찍었다.

'세계 재즈의 날'인 지난해 4월30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앞에서 연주했다고 하는 '갤럽스 갤럽(gallop's gallop) 등을 선보인 2부는 개별 연주자들의 기량이 한껏 드러났다.

가장 눈길을 끈 이는 베이시스트 존스. 특히 세계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투어 멤버인 그는 매 곡마다 튀지 않으면서도 뚜렷한 존재감으로, 그루브의 참된 묘미를 깨닫게 했다.

맑은 공기 속에서 하루에 클래식음악과 재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분명 호사였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축제는 보기 드물다"고 세계를 누빈 비올리스트 이한나가 말했다. 세계적인 클래식음악 축제로 발돋움한 여름의 '평창 대관령 음악제' 이어 겨울에도 평창에 와야 할 명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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