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의 무대… 날것 그대로 펄떡인 류승범

  • 최보윤 기자

입력 : 2017.02.20 03:01

[연극 리뷰] 남자충동

조광화 데뷔작 재연… 첫 주연… 남성 관객 비중 40%, 전석 매진
남자다움에 빠져 불행 이르는 목포 깡패 역할 실감나게 소화

묵직한 베이스 기타의 선율이 황량하게 들린다. 알 파치노의 '대부'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 옛날 일본식 가옥 무대로 배우 류승범이 들어서자, 조명이 밑에서 그를 비췄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 이죽거리는 입매와 눈빛으로 악랄해 보였다. 타고난 '양아치'의 골격이었다. "나 이름이 장정이여. 이장정. 튼튼허고 기운 좋은 어른 되라고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여. 나가 좋아허는 사람이 있는디 말여. 그기 '꼴레오네'여.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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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남자충동’에서 목포 깡패 이장정 역할을 맡은 류승범. 연기인지 실제 성격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입체적인 캐릭터를 살렸다. /프로스랩
지난 16일 연극 '남자충동'으로 연극 무대 '첫 주연'을 맡은 류승범은 어깨에 힘 빼고 흥 넘치는 모습으로 나왔다. "나가 패밀리를 지키는 일이라믄 워떤 적이든 가차없이 공격해부러. 나가 강헌게! 존경받는 가장! 그기 나 꿈이여." 질펀한 목포 사투리를 쏟아 내는 류승범은 '남자다움'에 사로잡혀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가족을 보호하려다 역설적으로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는 '목포 깡패' 이장정 역과 모자라거나 어긋나는 구석 없이 딱 맞았다.

류승범은 지난 2000년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데뷔한 뒤 '와이키키 브라더스' '품행제로' '사생결단'(2006) 등 충무로의 '앙팡테리블'이자 '비주류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영화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등에서 부패한 엘리트 검사, 냉철한 북한정보부 킬러 등을 맡으며 연기 폭을 넓혔다. 류승범의 연극 무대는 2003년 '비언소' 이후 14년 만이다. 현재 티켓 오픈된 3월 12일 자까지 전석 매진이다. 연극 관객은 보통 여성이 90% 이상인데, 이 작품은 남성 비중이 40%에 이른다.

1997년 조광화의 연출 데뷔작 '남자충동'은 당시 연극상을 휩쓸었던 작품이다. 배우 안석환이 이장정 역할로 주목받았다. 재공연 요청이 많았지만 2004년 이후 휴지기를 갖다가, '조광화 20주년'을 기념해 올해 다시 무대에 올렸다. "적당한 배우가 없고, 상업적 조폭 영화가 난무하면서 연출 의도가 잘못 해석될지 몰라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고 조광화 연출은 설명했다.

류승범은 엄마 역으로 더블캐스트된 배우 황영희에게 목포 사투리를 배웠다. 자폐아 막냇동생 달래를 부하 건달이 겁탈하려 하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대사를 두세 번 더듬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날것 같은 류승범의 연기는 허구를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버지 역을 맡은 김뢰하와 초연 때부터 함께한 어머니의 황정민, 노래하는 자폐 여동생 송상은 등 누구 하나 더하거나 덜어낼 것 없는 무대였다. 첫 무대 커튼콜 마지막에선 김뢰하가 류승범을 꽉 안아줬다. 류승범도 그제야 얼굴 근육을 풀면서 환하게 웃었다. 3월 26일까지 대학로 TOM 1관 (02)391-8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