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정, 클래식음악 대중화 위한 'IT투사'서 '전도사'로

  • 뉴시스

입력 : 2017.01.26 09:37

임현정
프랑스 유학파 출신 유튜브·아이튠스가 낳은 스타
"인간의 본질로 파고들 수 있게 도와준 게 피아노"
작년말 '임현정–베토벤 유명 소나타 모음집' 선봬
'클래식음악의 대중화'를 위한 클래식 'IT 투사'가 '전도사'가 됐다. 피아니스트 임현정(31)이다.

'유튜브가 클래식 음악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선언했던 그녀는 지난해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를 펴낸 이후 스위스의 중∙고등학교에서 '토크 콘서트'를 여는 등 온라인이 아닌 현장에서 대중과 만나며 클래식 알리기에 한창이다.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호텔에서 만난 임현정은 "연주회에서는 여전히 검은 드레스를 입지만, 유럽에서 토크 콘서트에 참여할 때는 모던한 한복을 입고 한국 문화도 알리고 있다"고 웃었다. 임현정은 유튜브와 아이튠스가 낳은 스타다. 2009년 벨기에 바젤에서 열린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 전곡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택한 '왕벌의 비행'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 스타'가 됐고, 한국인 연주자 중 처음으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는 물론 아이튠스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에서 피아노 관련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임현정은 열세 살에 홀로 프랑스로 유학을 훌쩍 떠났다. 콩피에뉴음악원과 루앙 국립음악원을 거쳐 열일곱 살에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입학했다.

자신이 존경한 라벨, 드뷔시, 생상스, 포레 등이 다닌 곳이라 이 명문 음악원을 택한 임현정은 최연소로 입학하고, 최연소로 수석 졸업하는 쾌거를 거뒀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넘어간 그녀는 "제게 언어가 없었죠"라고 돌아봤다. "외국인에게는 제가 바보처럼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세상과 저를 연결해준 것이 음악이었어요. 통역과 같았던 셈이죠. 감정을 전달하면서 소통해준 거예요. 음악이 저를 구원했고 지탱해준 거죠. 음악이 삶에 절대적인 것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음악이 결국 사명이 됐어요."

임현정은 사실 16세 때 비구니가 되기 위해 출가까지 고려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싶었어요. 부와 명예 등 외부적인 아름다움은 군더더기라 생각했죠. 그걸 없애고 본질에만 파고들고 싶어 종교를 택하려고 했는데 그 본질로 파고 들 수 있게 도와준 것이 피아노였어요."

음악을 통해서도 영혼의 본질을 탐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다. "잘하고 있는 음악을 버리고 종교에 입문을 하려는 자체가 또 집착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혼의 표현을 음악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임현정은 고국에서 2년 만인 오는 2월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무대를 연다. "항상 한국에서 연주를 하는 것이 꿈이에요. 외국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언제 한국에서 연주를 할 수 있을까라고 꿈을 꾸죠. 그래서인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눈물이 나네요."

이번에는 슈만의 '사육제', 브람스의 '8개의 피아노 소품', 라벨의 '거울', 프랑크의 '전주곡, 코랄과 푸가' 등을 들려준다.

자신이 아껴뒀던 프로그램이라고 눈을 빛냈다. "진정한 피아니스라면 베토벤, 소나타, 바흐, 쇼팽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소화해야 해요. 근데 이 작곡가들은 기본적인 숙제에요. 공부를 한 뒤 자다 새벽에 깨도 바로 연주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야죠."

앞서 EMI클래식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해 발매하고 지난해 말 베토벤 소나타 전곡 앨범 중 유명 소나타를 선곡한 '임현정 – 베토벤 유명 소나타 모음집'을 내놓은 임현정은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은 그간 해온 숙제를 끝낸 뒤의 오락 프로그램 같다고 여겼다.

"이번 프로그램은 제게 잘 맞는 곡들이에요. 예전에는 감히 제게 '이런 작곡가가 잘 맞는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런 말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왔죠."

20대 때 학구적이고 활기차며 열정적이었던 임현정은 30대에 접어들면서 여전히 지적이지만 좀 더 여유가 생기고 편안해졌다. "시간이 지나가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느껴지잖아요. 성장하는 것이요. 호호. 음악이 제게 더 큰 여유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그 만큼 추구하는 폭도 넓어졌어요."

임현정의 화법과 글 쓰기 능력은 본인의 연주만큼 화려하고 유려하다. 그녀의 책 '침묵의 소리'는 국내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출간한 출판사로 알려져 있는 알방 미셸을 통해 출간됐는데 지난해 10월 청미래를 통해 한국에도 발간되면서 그녀의 글쓰기를 칭찬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책 제목 '침묵의 소리'는 이번 리사이틀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임현정은 침묵은 "음악의 시점이자 끝점"이라고 정의했다. "맨 처음 낸 소리가 제 안에 있는 침묵의 질에 따라 달라지고, 내면에 있는 고귀한 침묵의 소리를 듣고 내는 사운드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임현정에 따르면 그 아름다운 첫 음을 내게 만드는 침묵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임현정은 연주가 끝난 뒤의 마지막 침묵에 대해 되려 '소리를 지른다'고 표현했다.

"연주가 끝나고 났을 때, 그 음악 자체에 담겨 있는 메시지는 연주 당시 얼마나 강렬했냐에 따라 달라요. 그 때 느껴지는 것이 침묵이 '소리를 지르는 거'죠. 한 자리에서 30명만 모여 경청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2000명이 그 침묵을 경청하는 자리는 정말 귀중한 시간이에요. 연주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저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음악을 아름답게 끌어내는 것 역시 의무죠."

음악이 끝난 뒤 침묵을 느끼게 하는 것도 연주자의 몫이라고 확신했다. 만약에 베토벤이 셰익스피어 동명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템페스트(폭풍)을 연주했을 때, 이 곡에 대한 사전 정보 없는 청중이 '폭풍 같다'고 느끼면 성공이라는 얘기다.

"침묵이 없으면 음악을 못해요. 백지가 없으면 글을 못 쓰듯이요. 시끄러우면 음악이 들리지 않죠. 음악이 존재함을 가능케 하는 건 침묵입니다."

결국 침묵은 백지요, 백지는 고정관념이 없는 상태다. "너무 생각이 많으면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어요. 자신을 내려놓고 걱정을 맡겨야죠.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들어보세요.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에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4악장은 누구라도 테이블 위에 올라가 춤을 추게 싶게 만들죠."

임현정은 이제 어릴 때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별을 이제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오는 일에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 역시 백지와 침묵, 즉 비움의 미학을 깨달은 셈이다.

"인생의 파도가 저를 알맞은 곳에 데려다 줄 거예요. 이제 파도를 타고 즐기고 싶어요. 파도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신뢰하고 인생을 맡기고 파도를 즐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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