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의 '떼창'과 헤드뱅잉이 완성시킨 '로큰롤 전당대회'

  • 김성현 기자

입력 : 2017.01.13 03:04

[리뷰] 미국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 4번째 내한공연

관객 1만8000명 중 남성이 70%
80~90년대 주요 히트곡 나오자 가사는 물론 前奏도 따라부르는
한국 관객의 열정적 '떼창' 시작… 강도 높은 메탈에도 열기 대단해

11일 밤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예정 시각보다 30분 늦은 오후 9시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했던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의 주제곡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미국 정상 헤비메탈 밴드인 메탈리카(Metallica)가 공연을 시작할 때마다 도입부에서 사용하는 선율이다. 1998년 이후 벌써 4번째 내한 공연이지만, '메탈 형님'들의 왕림에 객석은 또다시 한껏 달아올랐다. 이날 관객 1만8000여명 가운데 남성 비율은 70%에 달했다. 공연 시장 주도층이 20~40대 여성 관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남녀 관객 비율이 뒤집힌 셈이었다. 장안의 '헤비메탈 마니아'는 모두 운집한 것 같았다고 할까.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오래 지났죠. 새로운 노래와 오래된 노래를 섞어서 들려드릴게요." 메탈리카 보컬인 제임스 헤트필드(54)의 인사말에 장내는 '로큰롤 전당대회'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메탈리카 형님'들은 그리 말이 많지 않았다. 서너 곡을 연달아 부른 뒤에야 "아직 살아있지?"나 "오늘 밤 기분이 어때?"라고 한두 마디 짧게 툭툭 던졌다. 애당초 말은 필요없었을지 모른다.

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메탈리카의 내한 공연. 1998년과 2006년, 2013년에 이어 네 번째다. 관객들이 이들의 주요 곡 전주와 후렴, 기타 속주까지 따라서 함께 부르는 ‘떼창’은 어김없이 반복됐다.
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메탈리카의 내한 공연. 1998년과 2006년, 2013년에 이어 네 번째다. 관객들이 이들의 주요 곡 전주와 후렴, 기타 속주까지 따라서 함께 부르는 ‘떼창’은 어김없이 반복됐다. /A.I.M

메탈리카 내한 공연은 주요 히트곡의 가사와 전주(前奏)는 물론, 중간 기타 속주까지 관객들이 모두 '워워워워' 따라 부르는 '떼창(함께 부르기)'으로 유명하다. 메탈리카의 주요 곡을 모두 암기해서 부르는 한국 관객들의 열정적인 '떼창 문화'는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8년 만에 출시된 새 음반 '하드와이어드(Hardwired)…'에 실려 있는 신곡 위주로 들려준 초반부에는 관객들도 출제 범위가 다른 시험 문제를 받아든 수험생들처럼 낯설어했다. 1981년 결성된 메탈리카의 주요 히트곡은 1980~1990년대 음반에 몰려 있다. 따라 부르고 싶어도 따라 부르기 힘든 묘한 상황이었다.

총소리와 더불어 전쟁터의 참상을 5단 영상으로 보여준 1988년 대표곡 '원(One)'이 울려 퍼지자 잠시 당황하던 객석도 침착성을 되찾고 본격적인 '떼창'에 돌입했다. '마스터 오브 퍼페츠(Master of Puppets)'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 등 왕년의 대표곡들이 흐르자, 머리 흔들기(headbanging)와 주먹 불끈 쥐고 쳐들기까지 '로큰롤 전당대회장'의 열기도 절정에 올랐다. 기타리스트 커크 해미트(55)는 전자기타를 바닥에 눕힌 채 양손과 발로 마구 짓누르는 등 묘기에 가까운 주법(奏法)을 선보였다. '마스터 오브 퍼페츠'에서는 메탈리카와 관객들이 서로 메기고 받으며 노래 한 곡을 함께 완성시키는 '의식'을 거행했다.

사정없이 밀어붙이는 묵직한 사운드와 귀가 얼얼할 정도의 음량, 자로 잰 것처럼 빈틈없는 박자, 전쟁과 폭력처럼 어둡고 추상적인 노랫말까지…. 메탈리카의 장르는 헤비메탈 중에서도 가장 강도 높고 극단적인 '스래시 메탈(thrash metal)'로 분류된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와 대중문화 전면 개방과 더불어 유입됐던 서구의 청년 문화가 지금은 '아저씨'들의 건전한 '놀이 문화'로 정착한 셈이다. 이들의 최고 히트곡인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까지 넉넉하게 세 곡을 앙코르로 얹어준 뒤에야 공연은 끝났다. 록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하지만 결성 이후 30여년간 정상을 지켜온 메탈리카는 아직 헤비메탈의 왕좌(王座)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