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북한이탈주민 통해 본 한국의 민낯…연극 '탈출'

  • 뉴시스

입력 : 2016.12.26 09:33

연극 '탈출'
연극 '탈출-날숨의 시간'의 초반 40분은 웬만한 영화의 스펙터클 못지 않다. 북한 주민들의 탈출 장면이 제대로 된 대사도 없이 실감나게 펼쳐진다.

국립극장 KB하늘극장의 원형무대를 활용한 공간·동선 연출이 일품이다. 무대 위 아무렇게나 펼쳐진 듯한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수십 개 나무판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숨어 있는 창고를 비롯해 숲속, 강, 트럭, 뗏목 등으로 시시각각 탈바꿈한다.

그 위를 일사불란하게 종횡무진하는 배우 10여명의 동선은 꽤 복잡한데 치밀하게 계산돼 있는 듯 한치의 어긋남이 없어보인다.

고선웅 연출과 그가 이끄는 극공작소 마방진의 이런 합은 북한 이탈주민의 생존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런데 이들 고난의 본격적인 시작은 남한으로 넘어오면서부터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남한에서 실제 삶은 안갯속이다. 자매인 미선(양영미)과 미영(이지현)을 중심으로 고된 남한사회 적응기가 펼쳐진다. 다른 말투로 적대시되기 일쑤다. 누군가는 정착금 운운하며 세금과 일자리를 걸고 넘어진다. 상대적 빈곤은 이들을 더 위축시킨다.

결국 북한 이탈주민들의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까발려진다. 앞서 상반기에 국립극단, 다른 배우들과 공동 창작한 '한국인의 초상'으로 한국의 속살을 내보였던 고 연출은 이번에 다른 퍼즐 조각도 맞춰낸다.

과연 한국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들지만, 고 연출식 위로는 그래도 일말의 빛을 준다. 미선·미영 자매가 남한으로 들어오기 전 숨어 있던 창고 창문으로 스며들어오던 음악에 춤을 추던 순간, 한국에서 처절한 일들을 겪고도 크리스마스에 춤을 추는 순간처럼 삶은 계속된다. 20여명의 배우가 넘는 대형 연극으로, 뚝심이 돋보인다.

2014년 박찬규 극작, 고 연출의 각색으로 경기도립극단의 정기공연 당시 매진을 기록한 연극 '날숨간'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오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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