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 선물 보따리엔 '과학의 재미' 가득

  • 백수진 기자

입력 : 2016.12.22 03:17

[15년간 크리스마스 앞두고 과학연극 최정훈·황북기 한양대 교수]

선물 나눠주며 영화 속 과학 설명… '이동식 무대' 만들어 오지 찾기도
"아이디어는 아내가, 저는 머슴이죠"

최정훈(60) 한양대 교수(화학)의 연구실에는 실험 장비 대신 배트맨·스파이더맨 인형과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난감 자동차가 쌓여 있었다. 22일 오후 4시 30분 한양대 백남음악관에서 열리는 과학 연극에서 주인공 산타클로스 역을 맡은 최 교수는 밑줄을 쳐가며 대본을 외웠다. 아내인 황북기(55) 교수(화학)는 연구원들과 함께 연극 소품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부부는 2002년부터 15년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과학 강연극을 올리고 있다. 올해는 '산타가 들려주는 영화 속 과학 이야기'를 주제로 산타로 분장한 최 교수가 보따리에서 선물을 하나씩 꺼내며 영화 '트랜스포머' '해리포터' 등에 쓰인 과학기술을 설명한다. 황 교수는 기획과 극본 작업을 맡았다. 연극 중간에 나오는 투명 망토 실험, 인공눈 만들기 실험 등은 부부가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실험 장비를 만든다.

지난 15년 동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과학 연극을 올려온 최정훈·황북기 교수. 산타 모자를 쓴 이 부부는 “매번 세상에 하나뿐인 실험 장비를 만든다”며 “아직 남아 있는 동심이 원동력”이라고 했다.
지난 15년 동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과학 연극을 올려온 최정훈·황북기 교수. 산타 모자를 쓴 이 부부는 “매번 세상에 하나뿐인 실험 장비를 만든다”며 “아직 남아 있는 동심이 원동력”이라고 했다. /김지호 기자

부부는 매년 평균 50회에서 많게는 100회 이상 열리는 이동과학교실에서 호흡을 맞춰왔다. 직접 개조해 실험 장비와 최첨단 영상 장치를 갖춘 '이동 과학 트레일러'를 타고 전국 초·중등학교에서 무료로 과학 연극을 선보였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자율 주행 자동차를 몰고 '오페라의 유령'의 유령은 3D프린터로 만드는 식이다.

산골이나 섬마을 학교를 찾기도 했다. 최 교수는 "연극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문화 충격을 받더라"면서 "예산과 후원이 줄어 요즘은 구석구석 다니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무대, 마이크, 조명, 객석 설치까지 알아서 하려면 힘에 부치지만 아이들 덕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연극이 끝나고 한 아이가 쭈뼛쭈뼛 오더니 '나중에 크면 여기 와서 일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시작한 지 15년쯤 되니 실제로 한양대 학생들이 초·중학교 때 과학 연극을 봤다면서 감사 인사를 하러 오기도 해요."

이 프로젝트는 최 교수가 2002년 한양대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김종량 당시 한양대 총장이 독일 출장을 다녀와서 "독일처럼 교수들이 대학 밖으로 나가 청소년 교육을 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부부는 강의만 하면 산만해지는 아이들을 보고 연극 형식을 고안했다.

부부는 영화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수집한다. 최 교수가 "웬만한 영화는 같이 다 봤을 정도"라고 자랑하자 황 교수는 "남편은 3분의 1은 졸다가 내용을 놓친다"고 폭로했다. 허를 찔린 최 교수는 "아이디어는 아내가 다 내고 나는 머슴일 뿐"이라며 웃었다.

정작 자식 교육할 시간이 없어 "한글도 안 가르치고 초등학교를 보냈다고 선생님께 야단맞을 정도"였단다. 황 교수는 "주말이면 과학 실험 장비를 만드는데 두 아들이 매번 와서 도와줬다"면서 워킹맘을 응원해준 아들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요즘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과학 교육 기술을 일본·중국·방글라데시·인도·중동까지 전파하고 있다. 최 교수가 "여기저기서 내가 일을 벌여 놓으면 꼼꼼한 황 교수님이 다 수습한다"고 칭찬하자 황 교수는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인데 최 교수님 추진력이 남다르다"고 화답했다. 최 교수가 연극에 쓸 장난감 로봇을 조종하며 말했다.

"힘들어도 15년째 아이들이랑 부대끼는 걸 보면 우리 부부한텐 아직 동심이 남아 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