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22 01:09
[佛서 에세이 낸 피아니스트 임현정]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조기 졸업
"획일화된 교육코스 안 밟은 덕에 자유로운 연주자 될 수 있었죠"
초등학교 5학년 임현정은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잘 모르던 안경점 막내딸이었다. 하루는 동네 음악학원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그게 말이 되니? 네 또래 영재들은 대학교수한테 레슨 받고 하루에 열 시간씩 연습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엄마들이 김에 싸서 입에 넣어주는데, 너는 개구리 잡으러 개천으로만 뛰어다니잖아!"
소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열세 살에 홀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 콩피에뉴음악원과 루앙 국립음악원에서 실력을 다졌다. 목표는 피아니스트. 열일곱에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 최연소 입학, 3년 만에 수석 졸업장을 따냈다. 콩쿠르 입상 경력도 없었지만 2009년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리 연주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조회 수 25만건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2012년에는 메이저 음반사인 EMI 클래식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해 인터내셔널 버전으로 발매했다. 한국인 최초였다. 이 음반은 빌보드 클래식 종합 차트와 아이튠스 클래식 차트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했다.
지난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임현정(30)은 말했다. "영재들한테 요구하는 몸짓과 주법이 따로 있어요. 나는 왜 그런 가르침을 못 받는지 어릴 땐 억울했죠. 하지만 전형적인 음악 코스를 안 밟은 덕분에 지금처럼 자유롭게 칠 수 있었어요"
임현정의 피아노는 빠르고 강렬하다. 그는 "작곡가가 쓴 편지와 평전은 모조리 읽는다. 작곡가의 '스토커'라고 해도 좋을 만큼…"이라고 했다. 임현정 피아노의 일단계는 새벽 세 시에 깨워도 눈 감고 칠 수 있을 정도로 곡을 완전히 흡수하는 것. 음을 정확히 내려 노력하지만 틀리는 건 개의치 않는다. "걷다가 갑자기 넘어지고 말하다가 더듬을 수 있는 게 인간이잖아요. 인사할 때의 핵심은 어떤 마음으로 인사했느냐죠. '안·녕·하·세·요. 잘·지·내·셨·어·요?'처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틀리지 않고 말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제 연주가 별로라 해도 상관없어요. 우선순위는 제가 먼저 재밌어야 한다는 것. 남이 좋아해 주는 건 덤이라고 생각해요."
임현정은 지난 2월 프랑스 출판사 알뱅 미셸에서 서른 살까지의 삶을 압축한 에세이를 펴냈다. 베르베르의 '개미'를 출간한 유명 출판사다. 국내에는 지난 10월 번역돼 나왔다. 제목이 '침묵의 소리'(청미래)다. "2차 대전 중 포로수용소에서 큰 돌을 나르고 전후엔 생계를 위해 술집에서 피아노를 쳤던 헝가리 피아니스트 조르주 치프라처럼 글도 쓰고 즉흥 연주도 하고 인생 자체를 예술로 채운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내년 2월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는 슈만의 '사육제'와 브람스 '8개의 피아노 소품' 등을 선보인다.
▷SOUND of SILENCE=내년 2월 4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737-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