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연 경기필 단장 "말러 5번 도전, 큰 산 넘고 싶었다"

  • 뉴시스

입력 : 2016.12.14 10:37

"경기필과 저와 첫번째 만남이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이었어요. 벅찬 감정이 함께 했죠. 첫번재 음반은 그 감동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성시연(40) 예술단장 겸 상임지휘자가 이끄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데카에서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을 발매했다. 앞서 성 단장은 2014년 경기필 부임 후 첫 공식 연주회에서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며 '말러 스페셜리스트'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성 단장은 13일 오후 한남동 일신아트홀에서 열린 음반 발매 기념 간담회에서 "또 원래 도전적인 것을 좋아해서 큰 산을 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음반 발매 소감을 밝혔다.

2007년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성 단장의 첫 앨범이자 내년에 창단 20주년을 맞는 경기필의 첫 정규 앨범이다. 경기필 단원 93명, 객원 연주자 9명 등이 참여했다. 국내 첫 빈야드 스타일 홀인 롯데콘서트홀 개관 전인 지난 6월 이곳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성 단장은 "새로 지어진 홀에서 여러 테스트를 했어요. 울림이 많은 홀이라 어떤 결과물이 나올 지 미지수였죠. 동시에 상당히 궁금하기도 했죠"라며 "마이클 파인이 신기루를 발견한 듯항 느낌을 받았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서울시향 전 공연기획자문역인 마이클 파인은 세계적인 음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특히 1992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클래식 레코딩 프로듀서' 부문을 수상했다. 말러 교향곡 5번만 무려 5번 녹음 할 만큼 이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성 단장은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이끈 서울시향에서 부지휘자로 재직 당시 파인과 친분을 맺었다.

파인은 데카를 통해 "극한의 난곡인 말러 교향곡 5번을 선택한 성시연 지휘자와 경기필의 용기에 놀랐다"면서 "지휘자와 단원 모두 녹음기간 내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권위 있는 톤 마이스터(음향 엔지니어) 최진도 "롯데콘서트홀이 녹음에 굉장히 좋은 홀이라서 경기필의 이번 음반은 잔향이 풍부하고, 저음과 고음 모두 잘 살아있다"고 들었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자긍심을 보여준 성시연과 경기필의 말러 교향곡 5번은 첨예한 연주력과 극한의 표현력으로 말러라는 소우주를 웅대한 스케일과 강인한 에너지를 담아 펼쳐냈다"(박제성), "롯데콘서트홀의 풍성한 음향이 또 하나의 악기 역할을 해서 거대하고 복잡한 말러의 세계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등 클래식음악 평론가도 높은 평가를 했다.

성 단장은 "울림이 너무 고급스럽고 포근해요. 사운드 자체가 엄청나게 따뜻하게 감싼다"며 "우리 만의 특별한 사운드가 들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만족해했다.

이번 음반 녹음을 통해 경기필이 한번 더 도약한 계기가 됐다고 봤다. "경기필의 디테일한 면이 좋아졌어요. 녹음할 때 세밀한 음정, 리듬, 함께 하는 호흡하는 것들이 녹음 과정을 통해 서로에 더 듣게 됐고 알게 됐죠. 공연장에서 연주할 때 의 강렬함보다는 안으로 스며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번 음반은 우선 국내에서만 발매됐다. 순차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발매된다. 성 단장은 "애플뮤직에서도 들을 수 있게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경기필을 소속 예술단체로 둔 경기도문화의단장의 정재훈 사장은 "성시연 단장이 온 뒤로 여러 평론가나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성 단장이 경기필에 3년 간 있는 동안 국내 오케스트라로서 세 번의 '최초 결과물'을 냈다고 했다.

지난해 6월 한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공연한 것이 첫번째요, 이번 음반을 한국 오케스트라로서는 처음으로 데카를 통해 발매한 것이 두번째다. 세 번째는 경기필이 무직페스트 베를린(Musikfest Berlin)에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로 초청받은 것이다.

경기필은 작곡가 윤이상(1917~1995)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탄생일인 9월17일 콘체르트하우스에서 그의 교향곡인 '예악', '무악' 등을 공연한다. 특히 페스티벌 측은 경기필 초청에 맞춰 이 날 하루를 '윤이상 데이'로 정하고 윤이상의 작품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2005년 본격 출발한 무직페스트 베를린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실내악 앙상블 등이 참여하는 음악 축제다. 올해는 8월 31일부터 9월 18일까지 베를린 필하모닉홀, 콘체르트 하우스 등에서 19일간 진행된다. 다니엘 바렌보임, 쿠르트 마주어, 로린 마젤, 마리스 얀손스 등의 지휘자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등이 참여해왔다.

성 단장은 "제가 베를린 국립 음대(UDK)에서 피아노 공부를 할 때 윤이상 작곡가와 친분이 있었고, 그분의 곡들을 초연한 연주자들이 '윤이상 페스티벌'을 연 것처럼 공연한 적이 있어요"라고 돌아봤다.

"학생이었던 저는 한국 작곡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3일 간 페스티벌을 진행한 것을 놀라워했죠. 한국 학생 입장에서 자랑스러웠는데 이번에 엄청난 결과물을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성 단장은 한국 국·공립 오케스트라 첫 여성 예술단장으로, 국내 오케스트라의 양대 편견으로 지적받는 '여성'과 '지역'을 깨오는 행보를 선보였다. 이로 인해 올해 초 연임, 내년까지 이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그는 "그동안 경기필의 정체성을 만들고 도약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어떤 사상을 가지고 선정했어요. 음악적인 면이나, 인간적인 면이나 신경을 쓴 것은 하모니와 앙상블"이라고 했다.

내년 경기필과 함께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 브루크너 교향곡 7번, 말러 교향곡 9번 등을 들려주는데 "이제 경기필 만의 소리를 내고자 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느덧 마흔살이 넘은 성 단장은 떠오르는 지휘자에서 이제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확고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첫 음반 말러 5번에 지금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

인간의 고뇌와 절망이 녹아 있다는 평을 받는 곡이다. 중년이 된 말러의 자전적 이야기로 절망으로부터 희망으로 향하는 정신의 승리를 담고 있다. 성 단장은 특히 이번 녹음에서 말러의 세계관이 와 닿았다고 했다. 긍정과 부정이 함께 녹아 있는 모호함에 공감이 됐다는 얘기다.

"트럼펫 솔로로 곡을 시작해요. 말러가 자신을 1인칭으로 1악장에 이입을 한 거죠. 절규하는 본인인 거예요. 3악장에 들어갈 때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을 떠올렸는데 음악적인 양식이 같아요. '시인의 사랑'에서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모였지만 신부는 흐느끼죠. 말러의 세계관이 그 안에 있다고 봤아요. 웃고 있는데 울고 있고, 울고 있지만 웃고 있는. 5악장은 환희로 끝나지만 1인칭이 3인칭으로 옮겨져서 정말 그 개인이 행복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끝나죠. 저 또한 인생을 바라볼 때 그래요. 인생에서 정점은 없는 것인데 그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Copyrights ⓒ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