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은 예쁜데 담긴 음식이 시원찮네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6.12.12 03:26

[오페라 리뷰]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엣役 발성·음색 아쉬워… 사랑 고백 장면은 환상적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이 2년 만에 다시 올린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8~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은 "셰익스피어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그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연주 단체의 다짐이 민망했다. 격정이 거센 파도처럼 부서지는 전주곡부터 박진감 넘치는 선율로 관객을 사로잡아야 할 지휘자 김덕기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주역 가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중요한 순간은 거의 두 사람의 노래만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리엣 역 프랑스 소프라노 나탈리 만프리노의 부자연스러운 발성과 깨끗하지 않은 음색이 내내 귀에 거슬렸다. 내년 초 올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와 함께 로미오에 더블 캐스팅된 스테판 코스텔로는 만프리노보다는 무난했다.

로미오(스테판 코스텔로·오른쪽)와 줄리엣(나탈리 만프리노)이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이중창을 부르고 있다.
로미오(스테판 코스텔로·오른쪽)와 줄리엣(나탈리 만프리노)이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이중창을 부르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뮤지컬 '라이언 킹'을 책임졌던 리처드 허드슨의 무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짙푸른 밤하늘 점점이 박힌 별빛 아래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어린 연인들이 음습한 무덤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는 순간처럼 환상적 무대는 압권이었다. 하지만 그릇이 아무리 예뻐도 그 안에 담긴 음식이 시원찮으면 소용없다.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을 끝낸 지 20여 일 만에 올린 작품이어서 준비 기간이 촉박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2년 전 프로덕션을 리바이벌했으니 한층 농익은 작품을 보여줘야 했다. 소프라노 이리나 룽구와 테너 프란체스코 데무로, 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가 나선 초연 때의 성공과 달리 캐스팅에 실패하면서 어그러졌다.

국립오페라단은 관객들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보여줘야 할 책임이 있다. 민간 오페라단에 비해 예산이나 준비 여건이 월등하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연(年) 예닐곱 편밖에 올리지 않는 국립오페라단이 한 편 한 편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