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무용단 간판 스타' 박수정 "열정과 패기보다 이젠 신중"

  • 뉴시스

입력 : 2016.12.07 15:26

서울시무용단 간판 스타 박수정(31)이 여성성을 이야기하다. 서울시무용단이 8~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이는 정기공연 '더 토핑(The Topping)' 중 자신이 안무한 '지나간 여인에게'를 통해서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박수정은 "서른쯤이 되니까 10대, 20대에는 열정과 패기로 달리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여자로 살고 있는 제 삶과 지금 이 시각에서 바라보는 여자를 그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지나간 여인에게' 속에는 다양한 은유를 머금은 여성성이 등장한다. 여인으로 태어나 소녀, 엄마, 누군가의 애인 또는 배우자. 특정한 형태를 그리거나 정확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는다. 열린 해석이 가능한 무대다.

"여자 특유의 몸짓을 선보이지만 작품에 스토리텔링은 없어요. 상징적이고 추상적이죠. 보시는 분들이 무엇을 상상해도 맞죠. 예술에는 답이 없잖아요. '우리 엄마 같다, 여동생 같다, 친구 같다, 누나 같다, 할머니 같다'는 생각이 드실 듯해요. 여자의 이런 여러 모습이 결국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됐으면 했죠."

지난해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에서 자신이 안무하고 출연한 솔로 작 '템퍼러처, 러브(TEMPERATURE, LOVE)'로 그랑프리를 받았던 박수정은 이번에 작품의 스펙트럼도 넓히고 싶었다.

표현방법을 열어둬 한국무용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작년 안무자로 참여한 스트리트 댄서 최종인의 트레이닝을 포함한 다양한 표현기법을 활용한다.

"저희 무용단이 한국 무용을 하는 단체지만 움직임을 한국무용에만 국한 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 한국에서 선보이는 춤이 한국 무용이 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한국무용으로 표현한 것이냐 아니냐'라는 물음보다 '우리 정서'로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춤에 집중하게 됐죠. 각도, 동작이 다르더라도 질감과 정서가 같다면 춤의 순수함에 더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와 함께 자신과 절친한 친구인 배우 한예리(31)도 함께 한다. 국립국악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까지 함께 해온 사이로 8년 만에 같이 무대에 오른다.

박수정은 무용과 함께 연기를 병행하는 한예리의 역할이 크다고 귀띔했다. "이번 작품에서 초점을 맞춘 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에요. 무용만 한 사람은 극장 예술에 익숙해져 과장된 표현을 해 오히려 작고 편안한 움직임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예리 씨는 영화의 한 신(scene)에서 움직이다 보니 눈빛, 손 떨림 등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죠. 그래서 더 애잔해요. 집중감이 좋죠.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무대라 기대가 커요."

박수정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를 따라 호기심으로 춤을 시작했다. 이후 예고와 한예종까지 가게 됐다. 그냥 재미로 춤을 대하던 그녀는 대학에서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기본 춤을 다지기 시작했다. "미팅 대신 레슨을 찾아다녔다"고 웃으며 돌아봤다. "늦바람이 분 거예요. 한예종에는 전국에서 잘하는 친구들이 다 모였는데 제가 기를 펴지 못하겠더라고요. 무엇보다 실기를 다지는데 주력했죠." 박수정이 무용계에 이름을 알린 건 2007년. 2명을 뽑은 당시 국립무용단 입단 오디션에서 3등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심사위원으로서 그녀를 지켜본 거장 안무가 국수호가 자신의 대작에 박수정을 잇따라 캐스팅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2010년 서울시무용단 객원 무용수 오디션을 통해 '백조의 호수' 주역에 발탁됐다. 한국적인 정서와 함께 관능을 담은 그녀의 흑조 춤에 대해 호평이 쏟아졌고, 결국 그녀는 이듬해 이 무용단의 정단원이 됐다. 2012년 대작 무용극 '황진이'에서 타이틀롤을 맡아 한국무용에서는 보기 드문 팜파탈 캐릭터를 선보이며 스타덤에 올랐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잖아요. 국수호 선생님, 임이조 선생님(서울시무용단 전 단장)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덕분에 기죽지 않고 자신감이 생겼죠. 믿어주신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어요."

한국무용의 고즈넉함은 물론 169㎝ 키에서 뿜어져나오는 동작이 세련된 박수정은 배우 못지 않은 화려한 외모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주변에서 그녀에 대한 기대감 역시 높아지는데 "박수정 개인이 아니라, 저로 인해 무용을 보는 분들이 늘어난다면 감사할 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제가 예전에 (SBS TV 예능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서 뮤지컬 스타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무용에도 스타들이 나와서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고 했죠. 그 때 감히 뮤지컬계 조승우 씨처럼 '티켓 파워'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도 하고. 호호. 꼭 제 공연이 아니더라도 무용이 재미있다는 걸 전해드리고 싶어요."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동시에 노력파라 크게 슬럼프를 겪은 적은 없다.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더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먼저 떠난 지난해에는 큰 상심을 겪었다. "더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이 많았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으나 이내 하늘에서 자신을 계속 지켜보실 거라며 마음을 추슬렀다.

'지나간 여인에게'를 소극장 무대(14, 15일 서초구 두리춤터)에서 솔로 춤으로 변주해서 한번 더 선보이는 박수정은 일회성 공연보다는 생명력이 긴 작품들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이처럼 무용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그녀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무대가 무서워진다고 털어놓았다. "무대를 조금씩 더 잘 알아가니 이제 더 겁이 나요. 좀 더 작가적인 마인드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도 들고요. 진심으로 표현을 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젊었을 때는 그런 부분을 열정과 패기로 채웠는데 이제 신중해진 거죠. 제 춤사위가 더 깊어졌으면 해요."

한편, 서울시무용단 '토핑'은 다양한 장르에 한국무용을 얹어 협업한다는 의미다. 이번 무대에는 박수정의 '지난간 여인에게' 외에 강환규 '올드보이', 이진영 '비욘드 레테'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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