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제생이던 영재 "삶도 바이올린도 거리서 배웠다"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6.12.06 00:58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

美줄리아드음악원 14세에 입학, 음반 100장… 그래미賞 두번 받아
18년간 매년 20명씩 후학 양성도… 6일은 부산, 12일은 서울서 공연

5일 오전 서울 남산에 있는 반얀트리호텔. 기자가 명함을 내미니 "나는 명함이 없어요. 내 얼굴이 곧 명함 아니겠소?" 하며 껄껄 웃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Zukerman·68)이었다. 전날 밤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날아온 그는 조식 뷔페에서 늦은 아침을 먹겠다며 음식을 한 접시 담아 왔다. 버섯 무침, 삶은 두부 등 한식. 젓가락질도 곧잘 했다.

일곱 살에 바이올린을 처음 배운 주커만은 6년 뒤 이스라엘의 여름 음악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눈에 띄었다. 스턴은 열네 살 주커만을 미국 뉴욕으로 데려가 줄리아드음악원에 입학시켰다. 스물한 살이던 1969년 스턴의 대타로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해 성공을 거뒀다. 1967년 레번트릿 콩쿠르에선 열아홉 동갑이던 정경화와 우승을 나눠 가졌다. 100장 넘는 음반을 녹음해 두 차례 그래미상을 받았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물론이고 지휘와 실내악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뽐낸다. 올해로 데뷔 53년. "비결요? 연습. 타고나는 재능은 10%, 나머지 90%는 노력이에요."

핀커스 주커만이 빚어내는 소리는 찰지고 두꺼우면서 우아하다. “내가 연습에 매진하는 이유도 나 자신이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예요. 아름다운 소리는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잖아요.”
핀커스 주커만이 빚어내는 소리는 찰지고 두꺼우면서 우아하다. “내가 연습에 매진하는 이유도 나 자신이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예요. 아름다운 소리는 상대를 기분 좋게 해주잖아요.” /박상훈 기자

영재였지만 모범생은 아니었다. 선생들 눈을 피해 수업을 빠지고 맨해튼을 쏘다녔다. "뉴욕 거리에서 삶을 배웠어요. 수업 대신 리허설이나 음악회를 더 많이 보러 다녔어요. 그림도 보고, 멋진 빌딩에도 들어가 보고, 어떨 땐 카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사람들 수다를 엿들었어요. 도시의 냄새를 맡고, 하늘의 색깔을 눈에 담았어요. 물론 낙제했죠. 하지만 나 같은 학생을 참을성을 가지고 가르쳤던 선생님들에게서 많은 걸 배웠으니 운 좋은 애였죠."

그는 "두뇌, 심장, 뱃심.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진짜 음악이 나온다. 첫째는 음정, 둘째는 박자, 셋째는 아름다운 소리란 얘기다. 핵심은 '반복'이다. 정확한 스케일을 천천히 부드럽게 반복해야 한다"고 했다.

캐나다 국립아트센터 오케스트라의 명예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주커만은 18년째 해마다 10~15세 어린이 20명을 뽑아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독주보다 함께하는 실내악에 중점을 둔다. "왁자지껄 자기 얘기만 하던 애들이 사흘만 지나면 다른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남의 소리를 들으라고 하는 건 내게 숱한 가르침을 준 거장들이 말해준 거였죠."

나이가 들어서, 기량이 쇠해서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불안하진 않을까. 그는 "바이올린 잡은 지 61년. 주변의 참 많은 사람 중에서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해 사라졌다"고 했다. "인생이란, 음악이란 참으로 다채로워서 업 앤드 다운이 반복되고 정답은 없다는 걸 알아요. 종교를 좋아하진 않지만 불교의 순환 이치를 믿는 건 그 때문이에요."

오는 12일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음악감독 김민) 송년음악회에서 활과 지휘봉을 함께 드는 그에게 바이올린과 비올라, 지휘 중에서 가장 좋은 걸 물었다. "오! 난 소피아 로렌이 좋아요. 믿을 수 없게 아름답고 섹시하고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알잖아요." 그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남기고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해 자리를 떴다. 6일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에서 도쿄 필하모닉과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준다.


▷핀커스 주커만과 함께하는 KCO 송년음악회=1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2-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