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서 울린 뮤지컬 넘버…공연가에 쏟아지는 시국 풍자

  • 뉴시스

입력 : 2016.12.05 10:04

'박근혜 정부'는 공연계에도 최악의 정권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 '메르스 사태'로 공연가를 꽁꽁 얼렸다.

또 수면으로 드러난 '블랙리스트' 명단과 함께 결국 '최순실 게이트'로 성수기인 연말 시즌마저 냉각기로 접어들게 하고있다.

공연계는 혼란스런 나라 때문에 현재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평일 오후 같은 시간에 시작하는 '오후 8시 뉴스'라는 자조섞인 반응이다.

예술은 일상이다. 공연계가 작금의 시국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연극부터 상업적으로 치부되던 뮤지컬까지 나서 공감과 위로의 무대로 관객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촛불집회서 울려퍼진 뮤지컬 넘버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 문화제에서는 가수들 뿐 아니라 뮤지컬배우들 역시 목소리 높여 노래하고 있다. 연출가 변정주가 이끄는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배우들'이 대표적이다. 송용진, 정영주, 오소연 등 인기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정점은 민중봉기를 다룬 상징적인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와 '내일로'를 부를 때였다.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라는 뮤지컬배우들의 합창은 2016년 대한민국과 오롯하게 겹치며 전율을 선사했다. 2012년 말 국내 문화계에 '레 미제라블 신드롬'을 일으켰던 선봉장이었던 영화 '레 미제라블'(감독 톰 후퍼) OST를 찾는 이들도 늘었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주제곡과 같은 '빛'도 울려펴졌다. "불을 켜요 / 먼저 불을 밝혀요 / 어둠 속에 혼자서 있진 마요"라고 가족 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넘버는 촛불을 밝히고 이 자리에 모인 시민들을 위한 노래로 탈바꿈했다. 특히 "빛! 빛! 매일 매일 길 찾아갈 의지를 줘 알잖아 해 뜨기 전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합창할 때는 위로와 희망을 안겼다.

'세월호 7시간 의혹'과 맞물리며 다시 이슈로 부상한 세월호 참사 관련 노래도 빠질 수 없다. 전영관 시인의 산문집 '슬퍼할 권리'를 바탕으로 김명환이 작사하고 이한밀이 작곡한 '나 여기 있어요'도 시민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했다.

◇공연장에서 쏟아지는 시국 풍자

서울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오! 캐롤'은 초반에 신랄한 시국 풍자로 억눌렸던 관객들의 마음을 풀어준다.

스탠딩 코미디언인 주인공 허비는 자신의 집 개 이름이 순실인데 여기저기 똥을 싸고 다닌다며 달로 보내야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심심치 않게 '그네'도 달아주겠다는 말에 객석에서는 속 시원한 웃음이 쏟아진다. 1960년대 인기를 누린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곡을 엮은 주크 박스 뮤지컬로, 초반 풍자 코미디는 내내 유쾌한 극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도록 관객들을 안내한다.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신인 뮤지컬 작곡가·작가인 '버드'와 '더그'의 브로드웨이 도전기를 선보이는 뮤지컬 '구텐버그' 역시 자연스럽게 시국 풍자를 한다. 두 사람이 선보이는 활판인쇄술의 혁명가 구텐버그에 대한 뮤지컬은 권력을 혼자 쥐려고 하는 수도사를 다뤄 현 시국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더그가 버드가 숫총각이라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하야!'라고 외친 뒤 그를 무릎 꿇리고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장면은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버드는 "내가 이러려고 숫총각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최근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한 연극 '파란나라'는 고등학생들이 전체주의 광기로 휩쓸리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잘난 척 하는 학생에게 "네 엄마가 최순실이지"라며 정유라를 비꼰다.

3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한 국립극단의 셰익스피어 희극 '실수연발'에서는 이름이 같은 쌍둥이 형제들과 역시 쌍둥이 하인들이 오해와 해프닝을 그리는 과정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알자, "우주의 기운" 등을 운운한다.

◇잘 만든 작품이 갖춘 은유의 힘

직접적으로 시국 풍자에 대한 대사를 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현 시국을 반영하는 작품들도 있다.

대표적인 뮤지컬은 잠실 샤롯데씨어터 무대에 오르고 있는 '아이다'. 이집트에서 핍박받는 자신의 누비아 백성들을 보면서 지도자로서 눈을 뜨는 아이다, 자신의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가 노예들의 피땀 어린 것을 깨닫게 되는 암네리스. 두 공주는 진정한 지도자에 대한 자질을 깨닫게 한다.

최근 촛불집회 중심지역에 자리잡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 서울시오페라단의 '맥베드'도 마찬가지였다. 고선웅의 연극적인 연출과 구자범의 강렬한 음악적 해석이 돋보인 이 오페라는 베르디가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썼다. 그런데 현 시국의 심장에 절묘하게 비수를 꽂는다. 마녀들에게 놀아나는 맥베드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합창단원들은 촛불을 든 시민들처럼 "이게 나라냐! 도적들의 소굴이지"라고 술렁거린다.

4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하는 손호영·박호산·이건명·양준모·박지연 주연의 뮤지컬 '금강, 1894'는 좀 더 직접적이다. 동학농민운동을 담은 신동엽 시인의 장시 '금강'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고난의 삶을 사는 민초들은 촛불을 든 현재 시민들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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