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2.01 01:04
[국립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서 소프라노 박혜상 내주 국내 데뷔]
지난해 도밍고 콩쿠르 2위… 내년 초 메트로폴리탄 무대 서
"7년 전부터 꿈꿔온 줄리엣, 잘하려고 佛語 레슨도 받았죠"
지난해 7월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 앞을 막아섰다. '스리 테너'의 원조(元祖) 플라시도 도밍고였다. "따스한 얼굴로 '너의 노랫소리구나'라고 말을 건네는데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노래를 하면서도 실제로 그를 만날 거라곤 1%도 생각 못했거든요. 도밍고잖아요. 오페라계의 마이클 잭슨!"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꿀 넣은 카모마일을 홀짝이며 소프라노 박혜상(28)이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20대 소프라노를 찾기 어려운 국내 음악계에서 박혜상은 드물게 반짝이는 신예.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줄리아드대학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유학 갔다가 지난해 도밍고가 주관하는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여자 부문 2위를 차지하면서부터 주목받았다. 오는 8일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이 올리는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프랑스 출신 소프라노 나탈리 만프리노와 나란히 줄리엣 역을 맡았다. 국내 무대 첫 주역 데뷔다. 내년 1월엔 세계 최고의 오페라단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루살카'의 숲의 정령 역으로 데뷔한다.
"어릴 때 목소리가 너무 커서 엄마가 목욕탕엘 못 데리고 가셨대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월드비전 어린이합창단을 10년 넘게 다니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저 진짜 열심히 살아요. '쟤는 참 쉽게 얻네'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만큼."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프랑스어로 만든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은 기품 있는 선율과 시적인 가사가 어우러진 수작이다. 지난여름 캐스팅된 이후 뉴욕에 살고 있던 박혜상은 옷 몇 가지만 싸들고 파리로 훌쩍 떠났다. 석 달간 머물며 집중 어학 코스를 밟고, 파리 바스티유극장의 오페라 코치에게 레슨을 받았다.
"제가 본 줄리엣은 '이성적인 시인'이에요.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와 사랑에 빠졌는데도 '당신이 단순한 떨림 정도로 내게 다가온 거면 다신 보지 않겠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로미오가 사촌 티볼트를 죽였을 때에는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용기 있는 여자니까요."
박혜상이 악보 책을 꺼냈다. 첫 장에 굵은 글씨로 '2009. 12. 19.'가 적혀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줄리엣 오디션이 열린다는 소문을 듣고 서점으로 달려가 이 악보를 샀어요. 결국 다른 작품으로 바뀌었지만 미치도록 줄리엣이 되고 싶었어요. 그 후 7년, 드디어 꿈이 이뤄졌네요." 짧게 자른 머리가 귀밑에서 찰랑댔다. 무대엔 가발을 쓰고 올라간다.
▷로미오와 줄리엣=8~1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580-3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