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1.29 03:00
['석남 이경성 미술이론가상' 받은 이우환 화백 딸 이미나씨]
日 가나가와근대미술관 학예사… 20년 동안 한일 미술 교류 연구
지난해 공립미술관 순회전 기획
"아버지는 裏面 없는 올곧은 분"
지난해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일본 가나가와현립근대미술관, 니가타현립근대미술관 등 일본 내 현립 미술관 6곳에서 '한일 근대미술가들의 눈―조선에서 그리다' 순회 전시가 열렸다. 조선을 연결고리로 양국 작가들의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은 전시였다. 김환기와 그의 친구이자 서울에서 태어나 생활했던 화가 야마구치 다케오의 그림, 유영국과 그의 도쿄 문화학원 유학 시절 스승인 무라이 마사나리의 추상화가 어깨 맞대고 걸렸다.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두 나라의 생생한 미술 교류를 보여줘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미술관연락협의회에서 주는 2015년 전시회 부문 대상을 받았다. 이 전시를 기획한 주인공은 재일교포 이미나(50)씨.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예술대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시즈오카현립미술관 학예사를 거쳐 2003년부터 가나가와현립근대미술관 수석 학예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최근 미술사가인 이경성 선생을 기려 제정된 '석남 이경성 미술이론가상'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1995년 시즈오카미술관 시절 동아시아 근대미술을 다룬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저더러 한국인이니까 한국 담당을 하라더군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말 잘 못하는 한국 사람이 한국에 가서 무턱대고 작품을 빌려달라는 건 또 한 번 제국주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 사람 스스로 '근대'를 만들 기회를 일본이 뺏었는데, 한국 근대미술을 일본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도 무리라고 봤습니다."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씨가 일본 억양은 있지만 능숙한 한국말로 말했다. 그는 "안 된다고 했지만 전시가 진행됐고 이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해보자 싶어 연구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며 "그때 처음 찾아간 사람이 당시 도쿄 소게쓰(草月)미술관 명예관장이던 이경성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심사위원단은 그를 "한일 미술 교류를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역사로 접근한 인물"로 평했다. "한일 관계엔 쉽게 오해가 쌓이는 게 늘 아쉬웠어요. 미술 전시도 몸으로 부딪히면서 오해를 없애며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한일 근대미술가들의 눈' 전(展)은 연구회를 만들어 5년간 준비한 끝에 만들었다.
대학 시절 도쿄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열린 '루브르 전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시 기획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세계적인 한국 화가인 이우환 화백의 큰딸이다. 이 화백이 도쿄, 파리,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사이 가족은 1980년부터 도쿄 교외 가마쿠라에서 줄곧 살았다. "아버지는 엄한 분이었어요. 집에서 그림 그리실 때 가족들은 숨도 안 쉬었어요. 그 힘든 과정을 옆에서 봤기 때문에 작품 만드는 사람보다는 작품 옆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최근 이 화백을 둘러싼 위작 논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나는 작가로서 이우환 화백과 인간으로서 아버지 이우환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작가로도 인간적으로도 아버지는 이면(裏面)이라고는 없는 올곧은 분"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저희 세 자매 모두 한국 이름만 썼어요. 아버지는 조선시대 책상, 민화를 집에 두고 저희가 한국인으로서 자존감을 가지도록 하셨지요." 그의 스마트폰 바탕사진은 '동방신기' 유노윤호였다.
"1995년 시즈오카미술관 시절 동아시아 근대미술을 다룬 전시에 참여했습니다. 저더러 한국인이니까 한국 담당을 하라더군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말 잘 못하는 한국 사람이 한국에 가서 무턱대고 작품을 빌려달라는 건 또 한 번 제국주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 사람 스스로 '근대'를 만들 기회를 일본이 뺏었는데, 한국 근대미술을 일본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도 무리라고 봤습니다."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씨가 일본 억양은 있지만 능숙한 한국말로 말했다. 그는 "안 된다고 했지만 전시가 진행됐고 이왕 하는 거면 제대로 해보자 싶어 연구하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며 "그때 처음 찾아간 사람이 당시 도쿄 소게쓰(草月)미술관 명예관장이던 이경성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심사위원단은 그를 "한일 미술 교류를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역사로 접근한 인물"로 평했다. "한일 관계엔 쉽게 오해가 쌓이는 게 늘 아쉬웠어요. 미술 전시도 몸으로 부딪히면서 오해를 없애며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한일 근대미술가들의 눈' 전(展)은 연구회를 만들어 5년간 준비한 끝에 만들었다.
대학 시절 도쿄국립서양미술관에서 열린 '루브르 전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시 기획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세계적인 한국 화가인 이우환 화백의 큰딸이다. 이 화백이 도쿄, 파리,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사이 가족은 1980년부터 도쿄 교외 가마쿠라에서 줄곧 살았다. "아버지는 엄한 분이었어요. 집에서 그림 그리실 때 가족들은 숨도 안 쉬었어요. 그 힘든 과정을 옆에서 봤기 때문에 작품 만드는 사람보다는 작품 옆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최근 이 화백을 둘러싼 위작 논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나는 작가로서 이우환 화백과 인간으로서 아버지 이우환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작가로도 인간적으로도 아버지는 이면(裏面)이라고는 없는 올곧은 분"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저희 세 자매 모두 한국 이름만 썼어요. 아버지는 조선시대 책상, 민화를 집에 두고 저희가 한국인으로서 자존감을 가지도록 하셨지요." 그의 스마트폰 바탕사진은 '동방신기' 유노윤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