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1.25 16:29
뮤지컬 ‘CHOI’(초이·가제)의 윤곽이 드러났다. ‘최초의 한류스타’ 무용수 최승희(1911~1967)의 춤과 사랑에 주목하는 공연이다.
‘CHOI’ 기획발표회가 24일 저녁 서울 북촌로의 음식점 ‘한뫼촌’에서 열렸다. 최승희가 한때 거주한 집이다. 무용계는 물론 음반, 기업, 법조계 인사와 예비역 장성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24일은 최승희의 생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24일에 이곳에서 최승희 위령제를 집전한 차길진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 ‘CHOI’를 제작한다. “1년 전에는 최승희 선생에게 큰 재 한 번 올려주고 싶었을뿐이다. 이렇게 뮤지컬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게 인연 따라 흘러간다”고 밝혔다.
최승희의 제자 겸 동서인 김백봉 명무(89·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딸 안병주 교수(경희대 무용학)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최승희를) 형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두세 번뿐이다.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헤어진 뒤 오늘 처음 만난 듯하다”며 기뻐했다. 역시 김 명무의 딸인 안병헌 박사(김백봉춤연구회 상임이사)가 ‘CHOI’를 연출한다. 최승희의 조카이도 한 안 연출은 “겉모습만 흉내내서는 안 된다. 호흡, 집중력, 에너지, 그리고 고통과 불면 등 작품에 임하는 자세까지 담아내는 최승희 헌정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승희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 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련다”며 1930년대 후반 각국에서 150여 차례 공연했다. 34년 일본 청년회관에서 첫 무용발표회를 했고 37년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순회공연을 벌였다. 42년에는 16일 동안 24회에 걸쳐 연속 독무공연을 하기도 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그녀는 26년 도일,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제자가 됐다. 국내에서는 승무의 대가 한성준에게 전통무용을 배웠다. 29년 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개설했고, 이듬해 경성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 발표회를 열었다. 31년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 안막(안필승)과 결혼했다(월북한 안막은 58년 북측에 의해 숙청됐다).
47년 4월 월북한 최승희는 50년 소련 순회공연을 했다. 51년 중국 공연예술대 무용과 교수, 52년 공훈배우, 55년 인민배우, 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64년 ‘조선 아동무용 기본’을 냈고 66년에는 문학신문에 ‘조선무용 동작과 기법의 우수성 및 민족적 특성’을 발표했다. 69년 8월8일 그러나 북은 최승희를 숙청했다(2003년 사후 복권돼 애국열사릉으로 이장됐다).
최승희는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장 콕토 등 세계인을 사로잡은 불세출의 무용가다. 노래도 잘했다. 영화 ‘반도의 무희’의 주제가인 자작곡 ‘향수의 무희’를 비롯, 삽입곡 ‘축제의 밤’, 우리말로 불러 녹음한 유일한 곡인 ‘이태리의 정원’ 등이 전해진다. 하지만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요구로 만주, 남경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탓에 훗날 한국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고 말았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편히 잠들 수 없는 고혼의 이력이다.
한편 뮤지컬 ‘CHOI’는 12월21일 시연 예정이다.
‘CHOI’ 기획발표회가 24일 저녁 서울 북촌로의 음식점 ‘한뫼촌’에서 열렸다. 최승희가 한때 거주한 집이다. 무용계는 물론 음반, 기업, 법조계 인사와 예비역 장성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24일은 최승희의 생일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24일에 이곳에서 최승희 위령제를 집전한 차길진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이 ‘CHOI’를 제작한다. “1년 전에는 최승희 선생에게 큰 재 한 번 올려주고 싶었을뿐이다. 이렇게 뮤지컬을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모든게 인연 따라 흘러간다”고 밝혔다.
최승희의 제자 겸 동서인 김백봉 명무(89·대한민국예술원 회원)도 딸 안병주 교수(경희대 무용학)와 함께 자리를 지켰다. “(최승희를) 형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두세 번뿐이다. 항상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헤어진 뒤 오늘 처음 만난 듯하다”며 기뻐했다. 역시 김 명무의 딸인 안병헌 박사(김백봉춤연구회 상임이사)가 ‘CHOI’를 연출한다. 최승희의 조카이도 한 안 연출은 “겉모습만 흉내내서는 안 된다. 호흡, 집중력, 에너지, 그리고 고통과 불면 등 작품에 임하는 자세까지 담아내는 최승희 헌정무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승희는 “조선의 리듬, 더 크게 말하면 동양의 리듬을 갖고 괴나리 봇짐 짊어지고 지구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걸어 보련다”며 1930년대 후반 각국에서 150여 차례 공연했다. 34년 일본 청년회관에서 첫 무용발표회를 했고 37년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순회공연을 벌였다. 42년에는 16일 동안 24회에 걸쳐 연속 독무공연을 하기도 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그녀는 26년 도일,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제자가 됐다. 국내에서는 승무의 대가 한성준에게 전통무용을 배웠다. 29년 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개설했고, 이듬해 경성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 발표회를 열었다. 31년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 안막(안필승)과 결혼했다(월북한 안막은 58년 북측에 의해 숙청됐다).
47년 4월 월북한 최승희는 50년 소련 순회공연을 했다. 51년 중국 공연예술대 무용과 교수, 52년 공훈배우, 55년 인민배우, 5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64년 ‘조선 아동무용 기본’을 냈고 66년에는 문학신문에 ‘조선무용 동작과 기법의 우수성 및 민족적 특성’을 발표했다. 69년 8월8일 그러나 북은 최승희를 숙청했다(2003년 사후 복권돼 애국열사릉으로 이장됐다).
최승희는 헤밍웨이, 피카소, 찰리 채플린, 장 콕토 등 세계인을 사로잡은 불세출의 무용가다. 노래도 잘했다. 영화 ‘반도의 무희’의 주제가인 자작곡 ‘향수의 무희’를 비롯, 삽입곡 ‘축제의 밤’, 우리말로 불러 녹음한 유일한 곡인 ‘이태리의 정원’ 등이 전해진다. 하지만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요구로 만주, 남경 등지로 일본군 위문공연을 다닌 탓에 훗날 한국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고 말았다. 남과 북, 어디에서도 편히 잠들 수 없는 고혼의 이력이다.
한편 뮤지컬 ‘CHOI’는 12월21일 시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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