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콩쿠르' 우승 후 1년, 조성진 "카네기홀서 연락와 깜짝 놀라"

  • 뉴시스

입력 : 2016.11.16 16:30

서정적인 기운을 물씬 품은 채 격정적으로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 듯한 쇼팽 발라드 1번이 흘러갔다.

쇼팽 콩쿠르 최초 한국인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22)이 16일 오전 혜화동 JCC아트센터에서 들려준 쇼팽 발라드 1번에는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한다”(앙드레 지드 ‘쇼팽 노트’)는 쇼팽의 모든 것이 녹아 들어있었다.

올해 2월 서울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갈라 콘서트에서 앙코르로 들려준 녹턴 20번은 한층 무르익어 있었다. 묵직함의 여운을 이어가는 서정성이 일품이었다.

조성진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0월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벌써 1년이 됐어요. 아직 얼마 살지 않았지만 살아온 해 중 가장 빨리 지나간 한 해”라고 웃었다.

콩쿠르 우승 전후로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전보다 e-메일이 많이 온다는 점이요”라고 미소지었다.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데 정작 본인은 유명세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알아보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가끔 계시기는 한데, 제 인생이나 일상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에요. 다만 제가 원하는 연주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뀌기는 했지만 좋게 바뀐 것이니 긍정적이죠.”

자신의 본거지인 파리에 기반한 매니지먼트사인 솔레아와 계약한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 직후 매니지먼트사와 음반사(도이치 그라모폰) 결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11월초 런던에서 연주를 하고 계약서를 받았는데 무려 30쪽에 달하더라고요. 계약 관련 전문 용어도 처음 보고 협상을 안 해봐서 변호사에게 도와달라고 했어요. 제 인생에서 변호사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조성진이 존경하는 거장 피아니스트이자 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선생님을 일본에서 만나 의견을 여쭤봤죠. 그 때 하셨던 말씀이 ‘너의 직관을 믿어라’였어요. 그렇게 선택했죠.”

조성진은 오는 25일 생애 첫 스튜디오 정규 앨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발라드’를 발매한다.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과의 전속 계약 이후 발매하는 첫 스튜디오 앨범이기도 하다. 조성진을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이끌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이 수록됐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이 악단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지아난드레아 노세다가 함께 작업했다.

협주곡과 함께 쇼팽 발라드 전곡을 담았다. 한국에서만 발매되는 디럭스 버전에는 쇼팽 녹턴 20번이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됐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의 경우 지난 6월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발라드 전곡과 녹턴은 지난 9월 독일 함부르크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할레에서 녹음을 마쳤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는 이 공간에서 녹음한 영국 록밴드 ‘비틀스’, 거장 지휘자 카라얀의 사진을 보며 “설레고, 신기하기도 했다”고 부끄러워했다. “노세다 선생님과 런던 심포니도와도 호흡도 잘 맞아 수월하게 녹음했어요.”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할레는 조성진이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인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의 슈베르트 즉흥곡을 녹음한 장소라 더욱더 의미가 깊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홀로 작업한 발라드 전곡 녹음이 힘들었다고 했다. “협주곡은 사람도 많고 호흡하는 느낌이 있는데 솔로 스튜디오 레코딩은 큰 공간 안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려다 보니까 외롭기도 하고 고립된 느낌도 있었다”는 것이다.

쇼팽 협주곡은 지난달 미국 투어에서 연주한 것까지 합치면 총 50번 넘게 연주한 것 같다고 돌아봤다. “그러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었는데 그걸 조심했어요. 그 부분을 가장 신경 쓰려고 했죠. 처음 연주하는 듯한 프레시한 느낌을 살리려고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서 제일 힘든 건 ‘어떤 연주가 더 좋다고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은 가끔 설명하기 힘들 때가 있잖아요. 텔레비전이나 휴대폰같이 기능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비교를 하며 평가하는 것이 힘들죠. 이번에 발라드를 녹음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발라드 형식 자체가 쇼팽 이전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형식이었다는 거예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곡 안 에 있죠. 드라마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점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쇼팽 발라드는 어릴 때 지메르만의 음반을 듣고 빠져있던 곡이다. “그 때부터 뜻 깊은 음반인에 동시에 큰 산처럼 느껴졌죠. 꼭 녹음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이번에 하게 돼서 정말 영광이고 기뻤죠. 스물 두 살 나이에 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는 아직 모르겠어요.”

지메르만은 작년 쇼팽 콩쿠르 파이널에서 첫 번째로 연주한 조성진이 호텔로 돌아왔을 때 확인한 e-메일에서 ‘놀랍고 감동을 받았다’고 응원해준 연주자이기도 하다. “결과가 나오기 전인데 축하한다고, 너의 연주가 좋았다고 칭찬해주셨어요. 지금 그 때만 생각해도 너무 좋네요. 이후 한달 뒤 일본에서 리사이틀을 했을 때 뵀고, 이후에도 간간히 연락을 통해 응원을 해주세요.”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전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였던 쇼팽은 “제게 좋은 기회를 준 작곡가, 그래서 저한테는 의미가 깊은 작곡가”라고 여겼다. “앞으로도 쇼팽의 곡을 연주하고 공부하면서 연주활동을 하고 싶어요.”

조성진은 앨범 발매를 앞두고 이날 네이버 V앱을 통해 생중계되는 쇼케이스에서 팬들과 만난다. “원래 말 주변도 없고 라이브로 연주할 때도 긴장을 하는데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니까 더 긴장이 되네요. 하지만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서 기대도 돼요.”

조성진이 콩쿠르 우승 이후 예비 연주자를 둔 부모들의 교육열이 과열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조성진의 부모는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으로 유명하다.

“저를 압박하신 적이 없어요. 엄마는 제가 피아노를 끝까지 할 거라고 생각을 못하셨다고 하시고요. 하하. 항상 즐기면서 하라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콩쿠르가 나가는 것이 힘들면, 그만 나가라고 하셨죠. 고등학교 때까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음악을 하는데 압박을 주고 억지로 시켜서 하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한국은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기에 안 좋은 나라가 아니었다”고 여겼다. “지금 한국에서 가르치는 교수님들도 외국에서 공부하시고 경험도 많으세요. 한국에서 글로벌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유럽, 미국에서 교수님들이 오셔서 자주 마스터 클래스도 열고요. 저도 자주 받았고요. 교육적인 면에서는 한국이 좋다고 생각해요.”

내년 2월 리사이틀로 미국을 순회하는 조성진은 꿈꾸던 뉴욕 카네기홀(22일) 데뷔도 예정됐다. “카네기홀에서 연락이 와서 막연하게 (카네기홀의 두 번째 부속 홀인) 잔켄홀인 줄 알았는데 메인홀이라서 너무 놀랐어요. 저도 사람이라 목표를 하나 이루고 보니 욕심이 생겼어요. 연주자라면 꿈꿔보는 베를린 필이나, 빈 필과 연주해보고 싶어요.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두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입니다. 2017년에는 대략 80번 정도 연주를 할 것 같은데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를 돌 예정이에요.”

이 연주 횟수에는 내년 1월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치는 두 번의 리사이틀과 5월 통영 리사이틀이 포함됐다. 2017년 한국 연주 일정은 이것이 전부로 2018년 1월에는 전국 투어를 돌 예정이라고 했다.

조성진은 쇼팽 협주곡을 50번 연주하고 이번에 스튜디오 음반 작업을 하면서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고 했다. “같은 곡을 여러번 반복해서 연주하면 지루하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더 재미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고, 제 연주가 조금씩 느는 걸 볼 수 있어 좋죠. 적어도 50번은 연주해봐야 곡을 이해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3일 동안 발라드 녹음 작업이 특히 그에게 많은 생각을 안겼다. “첫째날은 발라드 3번, 4번. 두 번째날은 1번과 2번 그리고 녹턴 20번. 마지막 날은 처음부터 끝가지 쭉 연주를 했는데 앨범에는 마지막 날 연주가 들어갔어요. 이 부분에서 느낀 것이 많아요. 끝났다고 생각하고 긴장을 안 하니 연주가 더 잘 된 거죠. 다음에 녹음할 때는 참고를 해서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힘든 일정에도 “성격이 원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은 아니라서 괜찮다”는 그의 연주자로서가 아닌 청춘으로서 20대의 삶은 어떨까.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어요. 다른 또래들은 대학생활하면서 친구들이랑 어울려 다니는데 부럽지 않냐고요. 다른 생활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거죠. 그런데 제가 평소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을 하거나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에요. 제가 봤을 때는 그 분들(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이죠. 저는 음악가의 삶이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하는 일이 좋아요. 앞으로도 좋아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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