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경 "애달픈 '파리의 연인' 플루트의 매력 보여드릴 것"

  • 뉴시스

입력 : 2016.11.04 11:07

플루티스트 최나경(33)은 플루트 없이도 이 악기 소리를 냈다. 행복에 빠져 있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오선지에 걸려 있는 음표 사이를 오갔다. 화려하면서도 따듯했다.

최근 반포동 호텔에서 만난 최나경은 "스케줄은 여전히 많지만 예전에 비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웃었다.

"어렸을 때는 그냥 음악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세계 곳곳에서 연주를 해도 피곤해 호텔에 들어오고는 주변 풍경을 볼 마음도 없었죠. 지금은 아름다운 곳을 부러 찾아요. 연주하기 전날 호수가 찾아가고요. 호호호."

이유를 묻자 "아마 사랑을 해서?"라고 쑥스럽게 답한다. 그녀는 화사한 5월 오스트리아에서 현지인 선장과 배 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0세 연상의 그는 지난 2013년 만나자마자 청혼을 했다고 했다. "저를 많이 사랑해주시는 따듯한 분이세요."

최나경은 오는 12월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고향인 대전에서 한번 더 결혼식을 진행한다. 남편의 가족과 지인 등 15명이 이 결혼식을 위해 부러 한국을 찾는다. "한국에 대한 기대가 많다고 하시네요. 호호."

앞서 고국에서 6년 만인 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펼치는 최나경의 리사이틀 부제 '파리의 연인'이 와닿는 이유다. 이번 무대에서는 19~20세기 초 프랑스 작곡가들이 그녀의 연인이다.

가장 플루트다운 색깔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내놓은 레퍼토리다. 포문을 여는, 3분이 채 되지 않는 길이인 드뷔시의 시링크스에는 애달픈 전설이 배어 있다.

반인반양 모습인 목동의 신 판이 시링크스란 요정을 사랑했지만, 그 요정은 도망다니다 강가 근처의 갈대로 변한다. 판은 갈대가 소리를 난다는 걸 알고, 이를 꺾어 시링크스를 그리며 피리처럼 불었다고 한다. 모양은 지금의 플루트를 닮았고, 전체적으로 구슬프다.

이와 함께 고베르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풀랑크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포레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샤미나드의 플루트 콘체르티노 등 모두 최나경이 플루트를 위한 아름다운 곡들로 꼽은 곡들이다. "예전에는 연주자로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비르투오소(화려한 기교의 뛰어난 연주자)로서, 임팩트가 있고 화려해야 하고. 하지만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이번에는 '이것이 플루트'라는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번 프로그램 곡들이 만들어진 시기가, 그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플루트가 급격하게 발전한 시기에요. 연주자들도 예전에 비해 실력에 부쩍 늘었죠." 어려운 기교가 포함된 곡들이지만 "그보다 곡을 위한 것이라 아름답다는 느낌이 먼저 드실 거예요"라고 웃었다.

화려한 외모로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짙지만 사실 최나경은 소탈하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한 때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인 최초로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 주자로 입단한 그녀는 2012년 241대 1의 오디션 경쟁률을 뚫고 113년 전통의 비엔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한국인 최초 그리고 첫 여성 수석 주자가 됐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 입성한 지 1년 만에 단원 투표에서 재계약에 실패했다. 유럽 전역에 인종차별, 성차별 논란까지 낳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실력을 갖춘 최나경에게는 오히려 반전이 됐다. 가장 핫한 솔리스트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지난 10월에만 핀란드, 독일, 오스트리아를 오가며 솔로 무대, 협연, 콩쿠르 심사 등을 했다. "이제 음악가로서 '나 이렇게 잘해요'라는 의미는 없어졌어요. 제 실력에 대해 증명을 한다기보다는 이렇게 연주를 하는 자체가 행복하거든요. 큰 홀이든 작은 무대든 상관 없죠. 아주 가끔 집에서 쉬는 날이면, 그것대로 너무 행복하고요."

최나경은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 2년에 한번씩 마스터 클래스도 연다. 올해 여름에도 학생들을 만났다는 그녀는 "너무 좋아요. 스스로에게도 자극이 된다"고 했다. "그 반짝거리는 눈들로 쳐다보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든 100% 받아들이거든요. 예전에는 좋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걸 최고로 여겼지만 지금은 다양한 길이 있어요. 정답이 없는 만큼 다양한 길이 있거든요. 일반적인 시선보다 확신을 가지고 자신에게 맞는 걸 찾는 것이 맞죠."

최나경은 서울 공연에 앞서 5일 대전 예술의전당, 8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도 팬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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