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민트색 헤드폰끼고 걷는 사람, 배우…로드씨어터

  • 뉴시스

입력 : 2016.11.04 11:06

3일 오후 대학로 한 가운데 북새통을 지나 골목길. 똑같은 민트색 헤드폰을 끼고 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헤드폰에서는 전화통화하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목소리의 남자는 "좀 전에 다른 배우들과 준비하던 연극 '햄릿'이 엎어져 크게 상심하고 있다"며 "술 먹고 잊으라"는 누군가의 위로에도 시큰둥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명진)가 4일부터 대학로에서 선보이는 '대학로 활용 관객 참여형 공연'인 '로드씨어터 대학로'의 한장면이다.

똑같은 헤드폰을 쓰고 스마트폰으로 접속한 사이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집중하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목소리의 주인공, 진짜 '병식'이를 만난다.

대학로 뒷편 골목길에 오도카니 자리 잡은 소박한 집 한켠에 그의 자취방이 있다. 관객을 이끌던 조연출은 '어? 선배님 여기서 뭐하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병식은 연기 관련 서적, 물론 거기에는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 책도 포함돼있는데 이것들을 길거기에 자리잡은 쓰레기 재활용 장에 버리려던 하는 참이었다. 슬리퍼가 아닌, 유명 브랜드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가짜 3선 '쓰레바'를 질질 끌고 있는 그는 멋쩍어했다.

공연 시작 전에 엎어진 것도 일도 아니라며 무대에 올라간 뒤 여배우가 졸도를 해 병원 응급실에 배우들이 입고 의던 북한군 의상을 입고,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았던 에피소드 등 한참 연극배우로서 애달픔을 털어놓는다. 동시에 실제 강아지도 '멍멍' 짖는다.

'로드 씨어터'일명 '길거리 공연'는 세계적으로 보편화·확산되고 있는 공연 형식 '이머시브 연극(Immersive Theater)' 개념을 활용했다. 무대와 객석이 사라진 형태다. 해외에서는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가 대표적이다. 호텔을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라는 가상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앞서 한국에서는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룬달 & 세이틀(Lundahl & Seitl)이 지난 7월 서울 용산구 프로젝트 박스 시야에서 펼친 체험극 '엘레지'가 그 예다. 영상을 관람하고, 이후 암전된 공간에서 가이드와 일대일로 체험을 하게 되는데 블랙박스 형태의 공간에서 관객들은 가이드의 물음에 예스 또는 노, 라고 답하며 공연에 참여했다.

'로드씨어터 대학로'는 공연의 환영적인 형태(Illusion)가 아닌, 대학로의 실제 공간을 작품 안에 끌어들인다. 앞서 관객들이 찾아간 자취방 인근 골목 역시 실제 배우가 사는 곳이며, 그의 이야기는 배우 자전적인 삶이 반영됐다.

특히 사람들이 운집한 '공연의 메카' 대학로 곳곳을 걸어다니다 보면 관객도 공연의 일부가 되는 묘를 발휘한다. 민트색 헤드폰을 쓰고 이 공연에 참여하는 관객을 보는 길거리 사람들은 또 다른 형태의 관객이 된다.

헤드폰 속 목소리는 영국 거장 연출가 피터 브룩의 저서 '빈 공간' 속 글을 빌린다. "아무 것도 없는 어떤 빈 공간을 가상하고 그것을 빈 무대라 불러보기로 하자. 어떤 이가 이 빈 공간을 가로지로 또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연극 행위로서의 구성 요건은 충분하다." 그리고는 이 목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이 "관객일까요? 배우일까요?" 묻는다.

이후 도착한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연습실. 연극 교류로 한국을 찾았던 인도 연극인은 한국 처가댁 이야기를 하며 말로 한국의 현재 풍경화를 그려보인다. 타악기를 두드리는 그는 "음악은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선문답 같은 말을 쏟아내는데 정체성 혼란이 온 관객 또는 배우에게는 위안이 된다.

이곤 연출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단순히 보고 듣는 걸 떠나 관객이 체험하는 형식의 공연"이라며 "대학로라는 공간의 개성과 특성을 이해하고, 예술가의 삶을 관객들의 삶과 공간에 접목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6일까지 공연한 이후 11일부터 12일까지 다시 공연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인터파크 티켓 등에 문의하면 된다. 스마트폰 소지자만 참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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