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뜩이는 상상력, 강렬한 햄릿의 탄생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10.14 00:48

[화제의 영화·연극 리뷰] 연극 : 영국·덴마크 합작 '햄릿'

비탄에 잠긴 햄릿의 독백이 돌연 왕궁 잔치 장면으로 이어지고, 난데없이 선왕 혼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셰익스피어 고전 '햄릿'의 많은 인과관계가 대폭 생략된 자리를 음악과 이미지가 채운다. '무정부주의적인 블루스 스타일'이라는 평을 듣는 영국의 3인조 컬트 밴드 타이거 릴리스가 무대에 나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극 중 온갖 배역을 돌아가며 맡는 배우 다섯 명은 덴마크의 신진 극단 리퍼블리크 시어터 소속이다.

지난 12일 개막한 영국·덴마크 합작 음악극 '햄릿'(마틴 툴리니우스 연출)은 고전(古典)의 자유분방한 재해석이 빛을 발한 수작이었다. 전막 공연 5시간에 이르는 방대한 텍스트를 21개 장면으로 압축하고, 카스트라토 창법을 독학했다는 타이거 릴리스의 보컬 마틴 자크가 새로 만든 노래 19곡을 부르며 극을 진행한다. 창극의 도창(導唱)처럼 보이기도 해 흥미로운데, "삶은 어디로 가는가? 자아와 싸워 이기기 위한 분투라네" 같은 시적(詩的)인 가사가 처연한 멜로디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듯했다.

음악극 ‘햄릿’ 중 배우들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줄에 매달려 연기하는 모습.
음악극 ‘햄릿’ 중 배우들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줄에 매달려 연기하는 모습. /LG아트센터

그 사이사이 펼쳐지는 무대 연출은 강렬한 상상력의 천국이라 할 만했다. 배우들이 줄에 매달려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춤추는가 하면, 햄릿과 왕비가 서로 비난하는 장면에서는 벽이 90도로 쓰러져 거대한 운명에 짓눌리는 모습을 연출하더니, 폴로니우스의 죽음과 함께 무대 전체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 기법은 장례식장이 결투장으로 바뀌는 후반부에서 한 번 더 등장했다. 원작에서 대사로 표현되는 오필리어의 죽음 역시 평범하게 다루지 않는데, 허공으로 붕 뜬 오필리어가 벽에 비친 강물 속으로 빠지는 듯한 장면은 무척 아름다웠다. 독백이나 절규 장면에서 간간이 등장한 배우들의 정극 연기도 빼어났다.

그러나 이미지 중심의 연출이 희극에 가깝다 보니 스토리 자체의 비극성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타이거 릴리스의 노래는 종종 장황하게 이어져 극의 흐름을 끊었고, 음모와 복수를 포함한 모든 인생사의 부질없음을 노래한 가사는 연극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도록 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연출자의 의도였을 것이다.

▷14일까지 LG아트센터, 공연 시간 155분, (02)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