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0.11 14:25
[Table with]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의 고두심
내 인생 너무 풀가동했죠… 이젠 노는 법 배워볼래요
첫 악극 무대 망설였지만,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하면서 연기
"장학금 못 받아도 주는 사람은 되자"… 배우 되어 학교 찾아갔죠
배우 고두심(65)은 활어(活魚)처럼 펄펄했다. 2시간 넘게 무대에서 열연하고 내려왔는데도 지친 기색이라곤 없다. ‘디어마이프렌드’(tvN) 끝내자마자 ‘우리 갑순이’(SBS)에 합류했는데, 그녀는 지금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30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도 활보한다. 자식에게 뼛속 국물까지 짜내어 주고 스러지는 어머니로 분해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든다. “체력이 되시냐?”는 질문에 그녀가 씩 웃더니 말했다. “3일만 이 짓을 안 해도 병이 난다니까. 주어진 숙명이니 어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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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억척 연기 인생을 살아낸 고두심이지만 ‘도전’은 끝이 없다. 하이힐 신고 탭댄스 추던 ‘댄스레슨’으로 관객 몰이 한 게 그녀 나이 예순이었다. 드라마로도 바쁜데 2년마다 연극 무대에 오른다. “배우로서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번엔 노래도 부른다. “제작 발표회 날 기자들 앞에서 ‘여자의 일생’을 불렀는데, 분위기가 숙연해지더라고. 고두심이 노래도 부를 줄은 몰랐나 봐, 하하!”
5일 '불효자는 웁니다' 공연이 끝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무대 뒤 분장실 앞에 중국인 관람객들이 줄을 섰다. 안재모도 정운택도 아닌, 어머니 최분이로 열연한 고두심과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고두심이 분장실을 나서자 "와~" 탄성이 터졌다. 한 여성은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무대에서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대사는 정확히 몰라도 어머니의 사랑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며 그녀가 고두심 손을 꽉 쥐었다.
신파도 고두심이 틀어쥐면 '명작'이 되는 걸까. 1998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해 그 해만 10만명이 관람한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 도전한 그는, "악극이라 망설였는데, 무대 뒤에서 다른 배우들 노래하는 것만 들어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변사 능청에 웃음이 깔깔 나올 만큼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며 만족해했다.
무대에선 백발 어머니지만 극장 밖으로 나오면 패셔니스타다. 머리에 아무렇게나 눌러쓴 모자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도 쓰고 나와 화제가 된 소품. "파리 길거리에서 만원 주고 샀어요. 서울 길거리에서 산 모자 갖고도 어느 브랜드 제품이냐는 시청자들 문의가 쏟아졌다는데 기억이 안 나. 그냥 길 가다 마음에 들면 사는 거라. 물론 만원 넘으면 안 사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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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 뭐가 어때서?"
―악극 도전, 의외다.
"나도 처음엔 구시대의 유물이란 생각에 망설였는데, 악극이라고 기피할 이유는 또 뭔가 싶더라. 김혜자 언니도 첫 공연 보고는 잘 만들었다고 칭찬하셨다. 무대, 연출, 노래, 춤까지 젊은이들 좋아할 만한 장면이 많다."
―서울 가 출세한 아들이 홀어머니를 버린다. 그래도 아들 근처에서 맴돌다 뼈국물까지 짜주고 죽음을 맞이하는 어머니 이야기다. 매우 상투적인 줄거리, 대사인데도 고두심이 읊으니 눈물이 쏟아지더라.
"나는 감정이 진짜로 영글지 않으면 연기로 안 나온다. 서울 가는 아들을 뒤따르며 '밥 한 번 제대로 못 멕이고, 옷 한 벌 제대로 못 입혔는데…' 하는 대사 할 땐 정말 슬프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뭐든지 다 내어주시던 그 어머니를 생각하며 연기한다."
―출연진이 화려하다. 이홍렬씨가 변사, 안재모와 이종원이 아들 역으로 더블 캐스팅 됐다.
"어린이재단에서 함께 봉사했던 이홍렬씨가 변사를 맡는다기에 출연 결정을 굳혔다(웃음). 안재모는 젊은 친구가 옛날 노래를 참 구슬프게 불러 매번 내 가슴을 울린다. 이종원은 원래 가수로 데뷔했다고 하더라. 농담 삼아 '가수가 노래를 그것밖에 못하냐'고 했더니 '록 가수'였다고 해서 빵 터졌다."
―악역 전문이던 탤런트 이유리가 버림받는 애인으로 나오더라.
"근성 있는 배우다. 노래 실력이 뛰어난 편 아니었는데 개인 레슨까지 받으면서 장족의 발전을 했다. 재모와 듀엣으로 부르는 '사랑의 대화'는 정말 아름답다."
―커튼을 활용한 무대가 독특하다. 폭풍우도, 느티나무 아래 고향 마을도 커튼을 이용했다.
"아이디어가 좋았다. 특히 아들이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어머니 손을 놓고'를 부르는데 눈물이 절로 난다."
―신파라면 왠지 촌스러울 것 같다.
"공연 보신 분이 '이 악극 보면 우리가 뭘 잘못하고 사는지 알게 될 거'라고 소감을 적고 갔더라. 늙은 부모 찾아뵙진 않고 달랑 돈만 부쳐주는 것과 거지 노파에게 동냥 주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대사가 가슴을 후벼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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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지, 델 뻔했지"
―'디마프'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우리 갑순이'에다 '불효자는 웁니다'까지 섭렵하시나?
"고향 제주의 자연과 그곳 사람들 특유의 근성이 내 몸에 흐르는 것 같다."
―새벽 산행은 계속 하시나?
"사패산 묻지 마 살인 사건 이후로는 혼자서 잘 안 간다. 멧돼지 출몰도 무섭고. 옛날엔 무서운 게 없었는데."
―명배우들이 총출동해 화제 된 '디마프'를 끝낸 소감은?
"40년 연기하다 보니 이렇게 좋은 작품도 만나는구나 싶더라.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핏줄도 아닌데, 아프면 하던 일 멈추고 달려가고 내 일처럼 슬퍼하고 도와주고. 노희경 그 조그만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쓸 수 있는지 감탄했다."
―쟁쟁한 베테랑들이라 우려도 있었다.
"스태프가 초긴장했지. 근데 작가의 안배가 기가 막혔다. 물론 혜자 언니, 나문희 선생님이 많이 그려진 건 사실이지만 그걸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택골(저승) 갈 시간 가까운 사람들이 무슨 투정을 부리겠나. 물론 현장에선 불꽃이 튀었다. 자기 이름 석 자는 양보할 수 없으니. 불이 너무 뜨거워서 델 뻔했다니까(웃음)."
―아들 (김)정환씨가 디마프에 출연했대서 뒤늦게 화제가 됐다.
"시골에서 부모 모시고 사는 장애인 동생으로 나왔지. 그걸 연기하려고 나 몰래 밀양에 내려가 어느 농가에서 먹고 자고 일하면서 농사짓는 모습을 관찰했다더라."
―원래 연기 지망생이었나?
"미국 시러큐스대학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는데, 내가 계속 설득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안 되겠냐고. 자기도 고두심이란 이름을 평생 등에 메고 사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꾸더라. 졸업하고 딜로이트라는 컨설팅 회사에 들어가길래 마음잡았구나 싶었는데 2년 만에 덜컥 사표를 냈다.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연기라면서. 청춘들이 열광할 외모는 아니지만 중년까지 잘 버티면서 연기할 바탕은 갖췄다는 생각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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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은 효녀였을 것 같다.
"부모님 말씀을 하느님 말씀으로 여기고 살았다. 그만큼 훌륭한 부모님이셨다. 내가 우리 엄마 손을 꼭 잡고 다음 생애엔 내 딸로 태어나시라고 했다. 당신 이름 석 자도 못 쓰고 돌아가신 일자무식 여인이었으나 동네 궂은일 다 챙기고 지혜와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동남아까지 가셔서 무역상으로 성공하신 분이라더라.
"카이저수염에 상고머리 하고 다니셨지. 자전거에 도포 자락 휘날리고 달리시면 엄청 근사했다. 그래도 엄마랑 한번 싸우시는 걸 못 봤다. 두 분 다 말수 적고 속정이 깊은 분들이었다."
―힘들 때 부모님 생각 많이 하시겠다.
"몇 년 전 아버지가 꿈에 오셨더라. 나를 앉혀놓으시더니 '미안하다, 항상 너한테 미안하다' 하셨다. 그런 말씀 마시라고 손사래치다가 깼는데 여기 가슴에 엉키고 뭉쳐 있던 것들이 싸악~ 내려가고 없더라."
―크고 작은 봉사를 많이 하시더라.
"제주여고 다닐 때 공부 잘해 장학금 받는 애들이 부러워 다짐한 게 있었다. 한번도 못 받아본 저 장학금, 그걸 주는 사람은 돼보자. 배우가 되어 장학금 1억원을 가지고 모교로 돌아왔다."
―고두심의 다음 도전은 뭐가 될까?
"아유, 이제 좀 쉬엄쉬엄해야지. 너무 풀가동했다. 노는 방법 좀 배워봐야겠다, 하하!"
고두심은
제주 출생
제주여고 졸업
1972 MBC 5기 탤런트, 드라마 ‘갈대’로 데뷔
1990 ‘춤추는 가얏고’로 MBC 방송연기대상 대상 수상
2000 ‘덕이’로 SBS 연기대상 대상 수상
2004 영화 ‘인어공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여우조연상 수상
2005 김만덕기념사업회 공동대표
2007 ‘옥관문화훈장’
2009 어린이재단 나눔대사
2010 제주대 명예문학박사
2015 제주국제대 영화연극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