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감싼 채 휠체어 열연… 막 내린 뒤 울음 터뜨린 그녀

  • 유석재 기자

입력 : 2016.10.10 03:00

[갈비뼈 중상에도 연기 투혼… 연극 '마스터 클래스' 오른 윤석화]

공연 약속 지키려 재활치료 후 무대서 운동화 신고 연기… 커튼콜에 관객들 기립 박수
대기실의 박정자·손숙 보자 눈물 "연극이 널 일으켜 세운 거야"

무대 가운데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리며 휠체어를 탄 여성이 안으로 들어오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박수는 안 치셔도 됩니다. 수업을 하러 왔으니까요." 지난 7일 저녁 서울 국립극장,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로 분한 배우 윤석화(60)가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 첫 대사를 말하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지난 3월 같은 연극에서 성큼성큼 걸어올 때와 변함없는 카리스마였다.

공연을 앞둔 지난달 20일 교통사고로 갈비뼈 6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윤석화는 열흘 연기된 개막일을 지키려 재활 치료와 연습을 병행했다. 공연 직전 무대 뒤 칸막이 형태로 만든 임시 분장실에서 만난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집에서 두 차례 쑥뜸을 하고 간신히 나왔다"고 했다.

지난 7일 저녁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 첫 공연이 끝난 뒤 주연 배우 윤석화(가운데)가 휠체어에 앉은 채 함께 출연한 박선옥·양준모·윤정인(왼쪽부터)과 함께 ‘오 솔레미오’를 열창하고 있다.
지난 7일 저녁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 첫 공연이 끝난 뒤 주연 배우 윤석화(가운데)가 휠체어에 앉은 채 함께 출연한 박선옥·양준모·윤정인(왼쪽부터)과 함께 ‘오 솔레미오’를 열창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X레이를 찍어보니 등뼈에도 실금이 간 상태였다. 하지만 대사를 잊어버릴까봐 진통제도 맞지 못했다. 공연을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 "배우로서 무대에 선다는 건 내 삶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연 시작 전 출연진과 함께 '파이팅'을 외칠 때 울먹이는 배우도 있었다.

휠체어를 탄 윤석화는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신은 채 나왔다. 고통을 잊은 듯 도도하게 웃으며 또렷한 발성으로 연기를 했다. 젊은 가수들을 다그칠 때는 독한 모습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절규할 때는 회한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1막 중반부터 아픔을 참는 표정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그는 오른쪽 옆구리를 계속 왼팔로 감싸 안았다. 윤석화는 "인터미션 때는 너무나 아파 쓰러질 것 같았다"고 했다.

9일 연극을 보고 감동해 공연 직후 대기실에 찾아온 한 관객과 함께 울먹이는 모습.
9일 연극을 보고 감동해 공연 직후 대기실에 찾아온 한 관객과 함께 울먹이는 모습. /이태경 기자

"우린 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이 없는 세상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현명한 세상으로 말입니다." 공연 시작 2시간이 흐른 2막의 마지막 장면, 윤석화의 대사는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했다. 커튼콜에서 일어나 인사를 할 때 관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윤석화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정말 특별한 공연이 됐습니다"라 말하곤 함께 출연한 양준모·박선옥·윤정인과 함께 '오 솔레미오'를 열창했다.

다시 분장실에서 만난 윤석화는 "온몸에 총을 맞은 것 같다. 너무 서럽다"며 울었다. 옷을 갈아입고 대기실로 들어가서는 그를 기다리던 선배 배우 박정자·손숙과 얼싸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손숙이 말했다. "연극이 너를 일으켜 세운 거야. 그런데 배우가 이게 무슨 팔자니?" 윤석화가 대답했다. "언니, 내가… 이젠 못 할 게 없을 것 같아."

▷연극 '마스터 클래스'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02)3672-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