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연출가 "'산허구리' 작업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 뉴시스

입력 : 2016.10.07 11:37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서 프레스콜
"너무 많이 울었어요. 너무 심난해서. 옛날 분들 너무 힘들게 살아서요."

'서정적 리얼리즘의 선구자'로 통하는 극작가 함세덕(1915~1950)의 첫 번째 희곡 '산허구리'를 무대 위로 옮긴 스타 연출가 고선웅(48)이 6일 오후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작업 과정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유치진에게서 극작법을 배운 함세덕은 그의 사실주의 연극관의 영향을 받았다. '산허구리'는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 삶의 터전이자 처절한 생존의 공간이었던 서해안의 어촌 마을에 사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순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930~40년대 많은 작품들이 일제의 탄압정책으로 인해 당시의 가난을 보여주는데 주력했으나 '산허구리'는 가난 속에 참담한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모순 가득한 비극의 원인을 찾아냈다.

중국의 고전 '조씨고아'를 재해석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을 통해 '각색의 귀재'로 통하는 고 연출은 이번에 원작에 충실한 사실주의 연극에 도전한다. 프로무대에서 첫 사실주의 연극이다.

"사실주의 극이 TV드라마와 구분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엄청난 프로덕션 백업이 있지 않는 한 영세한 극단에서는 사실주의를 하기 힘들죠."

국립극단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고선웅은 이번에 배우들이 서해안 가서 조개를 줍고, 역사적 고증을 해나가는 등 철저한 프리 프로덕션을 거쳤다. "배우들도 캐릭터 연배와 비슷한 분들을 캐스팅하고, 극적 상황도 비슷하게 해야해서 웬만해서 하기 힘들고 엄두도 안났어요."

고 연출이 '산허구리'를 연출하게 된 가장 큰 동기 중 하나는 극 중 셋째 아들 석이의 "왜그런지 생각해볼거야, 긴긴밤 생각해볼테야"라는 대사 때문이었다.

"그 어린아이의 자아로 '왜 우리는 이렇게 울고불고 살아야하는지 생각해보겠다'고 말한 것이 일제시대 궁핍한 삶에서 깨달음 같은 거라고 느꼈거든요."

근데 생각에서 그치고, 이후 구체적인 실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저도 이 작품을 하면서 생각했어요. 다음 과연 어떤 것을 해야할까를 고민했죠. 여러분께서도 같이 고민해보면서 더 좋은 인생, 더 행복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셨으면 했죠."

희곡을 절대 고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고 연출은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약속을 지켰다. "중간에 바꾼 건 거의 없어요. 근데 '맨 끝에 도가집에 수염 걸듯이 초가를 치르자고 말하는 것'이 막의 끝인데 그렇게 끝나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난하기만 하고. 그래서 (둘째 아들 복조와 관련한) 다음을 붙이게 된 것이에요. 그가 아무래도 생각해도 실성한 어머니 눈에 보여야 겠다고 생각했죠."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극에 공감하는 고 연출의 감성을 높이 샀다. "앞서 (국립극단과 고선웅 연출이 처음으로 협업작인) '조씨 고아' 연출할 때 연습장에서 연출이 우는 건 고 연출 때문에 처음 봤어요. 40년 넘게 연극해왔지만 배우들을 지휘하는 연출이 꺼억꺼억 우는 건 처음이었죠"라고 돌아봤다.

"그것이 참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는 세계에 대한 철저한 믿음, 인물들이 겪는 픽션의 고통을 실제처럼 느끼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선웅 연극의 순수미'죠."

'산허구리'는 함 작가가 21세이던 1936년 '조선문학'을 통해 발표했다. 이후 규모가 작은 극단에서 몇십명을 상대로 3일 가량 공연한 기록이 있다. 실질적으로 일반 관객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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