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티켓' 등장…공연계 생존 몸부림

  • 뉴시스

입력 : 2016.10.04 10:23

# 지난 27일 예술의전당 선 예매를 통해 빈체로 주최로 12월 내한하는 마리스 얀손스 & 독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티켓을 예매하려던 A씨는 깜짝 놀랐다. 최대 30만원가량 하던 2층의 일부 로열석이 약 12배 가량 낮은 2만5000원이었던 것이다. A씨는 엄청난 이득을 봤다며 쾌재를 불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29일 일반 예매에서 이 2층 좌석을 구하기 위한 예매 전쟁이 나기도 했다.

지나달 28일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공연계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티켓 값이 선물 상한액인 5만원을 넘어서는 클래식계가 고심 중이다.

과거 공연에서 R석, S석, S석으로 나눠져 일부 앞자리의 티켓값이 최대 20만원까지 하던 예술의전당 2층 좌석을 C석으로 통합해 모두 2만5000원에 내놓은 것이다. 기획사는 2장을 사도 5만원이 넘지 않도록 가격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클래식음악계는 지금까지 유료 관객의 절반가량을 기업 협찬 등에 의존해왔다. 기업들이 메세나의 하나로 티켓을 대량 구매해 초대권 형태로 VIP, 공연 소외 계층 등에게 나눠주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런 관례를 따르다가 티켓이 유관 기관 등에 흘러 들어가면 김영란법에 접촉된다. 하지만 이번 할인은 특정인이 아닌, 일반 관객들에게 열려 있던 만큼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다.

업계는 이 티켓을 ‘김영란 티켓’으로 부르고 있다. 앞서 서울의 한 공연장은 최저 5만원짜리 공연의 티켓을 4만원으로 낮추기도 했다. 역시 상당 부분 티켓 판매를 기업에 의지해온 오페라 제작사 관계자들 역시 이런 종류의 티켓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 구매량이 전체 좌석의 20% 안팎으로 추정되는 대형 뮤지컬 관계자들도 고심 중이다. 개별 고객 클래식보다는 많은 편이지만, 뮤지컬 역시 기업들이 고객을 위한 판촉 등을 위해 뮤지컬 티켓을 상당 부분 사들였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연말에 예정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예년에 비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작비가 원체 높은 탓에 티켓 가격 전체를 낮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연말 예정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이번 얀손스 사례처럼 2, 3층의 좌석을 균일적으로 낮출까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저렴한 대학로 뮤지컬과 연극, 국공립극장의 연극들도 김영란법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소극장이라도, 규모가 있는 뮤지컬 가격은 5~7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다 연극 역시 보통 2장씩 선물하니, 이 역시 5만원이 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동안 침체의 늪에 빠진 공연계에 김영란법이 더 타격을 줄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기존 공연의 질을 유지하려면 제작비를 유지해야 하는데, 티켓 값을 낮추면 전체 매출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참에 거품을 빼자는 이야기도 한편에서는 나온다. 외국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가격은 일반이 보기에는 값비쌌다며 이참에 알짜배기나 효율적인 공연 빈도를 높이자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공연은 한계가 있다. 결국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연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티켓값을 낮추는 건 현재 살아남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티켓값이 낮아져 관객들에게는 이득으로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현재 상황일 뿐이라는 시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공연 관계자는 “기획사, 제작사들의 전체 매출이 낮아지면 작품에 투자하는 돈도 그만큼 낮아져 질적인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결국 흥행만이나 안정만을 추구하는 작품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영란법 위반 사례를 고발해 포상금을 챙기는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도 공연 관계자들을 한껏 위축시키고 있다. 뮤지컬 관계자는 “현재 제작사들끼리 눈치를 보거나, 첫 적발 사례가 돼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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