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9.29 00:48
햄릿: 완전 무삭제 공연
"자, 가서 병사들에게 조포(弔砲)를 발사하도록 하라."
노르웨이 왕자 포틴브라스의 마지막 대사와 함께 무대의 불이 꺼졌다. 밤 10시, 공연을 시작한 지 6시간 만에 비로소 박수가 터졌다. 배우들이 여전히 극 중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으로 무대에 서서 인사했다. 배우는 17명, 마지막까지 객석에 남은 관객도 비슷한 숫자였다.
대학로에서 지난 21일 개막한 연극 '햄릿: 완전 무삭제 공연'(사진·남육현 역·연출)은 단행본 230쪽 분량의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의 모든 대사를 편집 없이 무대에서 고스란히 공연하는 작품이다. 인터미션 1시간을 제외한 총 공연 시간은 약 300분(5시간). 올해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햄릿'이 145분,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햄릿 더 플레이'가 135분인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분량이다.
2014년부터 2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햄릿'을 공연했던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은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무삭제 버전을 올리기로 했고, 공연 기간 12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장시간 공연을 하는 강행군에 나섰다.
지금까지 본 많은 '햄릿'이 극장판 영화라면, 이 '햄릿'은 천천히 진행되며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은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호레이쇼와 병사 두 명이 등장하는 첫 장면만 10분이 넘었고, 극중극 장면은 20분 가깝게 계속됐다. 햄릿의 독백과 클로디어스 왕의 기도처럼 배우 혼자 나오는 장면에서는 대단히 많은 대사가 장광설처럼 이어졌다. 21세기 관객이 보기에는 상당히 느린 흐름으로 전개됐고, 복수를 미루는 햄릿의 우유부단함이 더 돋보였다.
그러나 원작 희곡의 주옥같은 대사들이 세밀한 부분까지 살아나면서 배우들의 역할 몰입도 역시 상승했다. 일부 배우는 많은 대사 소화가 벅찬 듯했지만, 햄릿 역 오준호는 의외로 대단한 열연을 보였다. 오필리어에게 "수녀원으로 가라"며 절규하는 3막 1장에선 진짜로 얼굴이 붉어지고 눈이 뒤집히는 듯했다. 밤 9시가 넘어서 벌어진 검술 시합 장면에서도 배우들은 그다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고 연기에 몰두했다. 자세가 흐트러진 쪽은 오히려 객석이었다.
▷10월 2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엘림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