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 따로 없어요, 철저히 준비해야 단원 이끌 수 있을 뿐"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6.09.26 00:24

유럽 명문 로테르담 필 새 지휘자 된 스물일곱 라하브 샤니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 라하브 샤니(27)는 최근 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6월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로서 창단 100년을 눈앞에 둔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데뷔 무대를 가졌는데, 두 달 만에 그 악단을 책임지는 상임 지휘자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1918년 탄생한 로테르담 필은 전설적 지휘자 빌럼 멩엘베르흐를 거쳐 데이비드 진먼,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 명(名)지휘자들의 조련을 받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샤니는 로테르담 필 역사상 가장 젊은 지휘자로, 악단이 창단 100주년을 맞는 2018년 9월부터 현 상임 지휘자인 야닉 네제―세갱(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을 이어 활동하게 된다. 단원 전체가 그를 선택해 음악계가 더 놀랐다.

라하브 샤니는
라하브 샤니는 "어릴 때부터 합창 지휘자였던 아버지가 단원들을 존중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걸 보며 자랐다."고 했다. /고운호 객원기자
"비법요? 따로 없어요. 지휘자 자신이 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고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는 것뿐." 지난 23일 오전, 서울시향 '쇼지 사야카의 프로코피예프' 음악회를 앞두고 만난 이 젊은 지휘자는 "철저히 준비했을 때에만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이끌 능력이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3월 내한 땐 없었던 수염이 앳된 눈빛을 감싸고 있었다.

2013년 구스타프 말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샤니는 같은 해 가을 주빈 메타가 이끄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에 지휘자로 서면서 본격 지휘 여정을 시작했다. 그후 3년 새 수직 상승했다. 2014년 6월 미하엘 길렌을 대신해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했고 지난해 말에는 프란츠 벨저―뫼스트를 대신해 빈 필하모닉을 이끌어 청중과 평단으로부터 기립 박수와 찬사를 받았다. 올 초엔 필립 조르당을 대신해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유럽 투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날 저녁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샤니는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을 지휘하며 진가를 드러냈다.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모든 악기가 독주악기처럼 주연을 맡은 협주곡이어서 자칫 정신없고 뒤엉키기 일쑤인 작품. 샤니는 침착하게 강약을 조절해 초반의 음울한 어조와 대비되는 장대한 피날레를 살려냈다.

지난 6월 로테르담 필을 리허설하러 갔을 때 샤니는 자신이 상임 지휘자가 되리라 직감했다고 했다. "단원 모두가 저에게 미소를 띤 채 환대했어요. 담담한 척했지만 리허설을 끝내고 대기실로 가자마자 여자 친구에게 전화해 '여기서 날 꼭 뽑아줬으면 좋겠어' 했는데 그 주에 바로 연락이 왔죠."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악원에서 지휘와 피아노를 공부하던 시절, 지휘자 바렌보임을 만났다. 바렌보임은 자신이 이끄는 리허설과 연주에 그를 불러서 지켜보라고 했다. 많이 보고 흡수하는 게 제일 좋은 거라 했다. 지휘자로서 가장 중요한 건 각 오케스트라가 갖고 있는 장점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로테르담 필에서 게르기예프는 러시아 레퍼토리를, 네제―세갱은 프랑스 레퍼토리를 늘렸어요. 저는 그 스타일을 잃지 않으면서 저만의 독일 레퍼토리를 늘리고 싶어요. 베토벤의 한 부분만 떼어내 듣는 게 아니라 그 음악 안에서 베토벤이 추구했던 철학, 그가 지구상에 전파하고 싶었던 이상을 관객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요."